[독자수필]김석현/『당신은 좋겠수』

  • 입력 1997년 4월 5일 09시 20분


『당신은 등 밀어주는 아들이 있어 좋겠수』 아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아들 녀석이 서너살 때까지는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다니다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그 업무를 인계받은 뒤부터 하는 말이다. 사실 목욕탕에서 몸을 씻다 보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 부위가 있게 마련인데 옆 사람의 신세를 지기도 싫고 해서 그냥 나오곤 하니 잔등은 늘 손이 못가는 오지로 남아 있다. 그런데 아들녀석과 함께 목욕탕을 다니면서 이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됐다. 아내 입장에서는 몇년동안 데리고 다니며 때를 밀어준 아들이 등을 밀어줄만한 나이가 되자 남편한테 빼앗겼으니 분통이 터질만도 하다. 그래서 일요일 아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하는 내 뒷모습을 향해 아내는 『당신은 조―옷―겠―수』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나도 어느새 이만큼 자라 아빠의 잔등을 밀어 주겠다고 달려드는 녀석을 볼 때면 가슴이 뿌듯하다. 그러나 뿌듯한 기분은 잠시, 막상 녀석에게 등을 맡기고 나면 우선 심호흡을 하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그마한 손에 때미는 수건을 끼고 한부분만 집중적으로 밀어대니 금방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을 돌리며 아프다고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여보 개운하죠』 아들 녀석을 앞세워 대문을 들어서는 나에게 아내가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래, 개운하다 못해 쓰리고 아려서 죽겠소. 자 이리 들어와 봐요』 방안으로 들어가 윗옷을 걷어올려 잔등을 보이자 아내가 깜짝놀라 묻는다. 『당신 왜 이래요. 뜨거운 물에 데었어요. 아니면…』 『뜨거운 물이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부러워 하는 아들한테 데었소. 어찌나 쑤시고 파는지 잔등이 다 해졌소』 이 사건 이후 아내의 빈정거림은 한수 더 높아졌다. 『당신은 좋겠수. 힘센 아들을 두어서…』 김석현 (서울 종로구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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