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89)

  • 입력 1997년 4월 5일 09시 20분


거리에서〈12〉 『이 기차를 탄 사람 가운데 남자와 여자가 함께 탄 젊은 사람들은 아마 모두 해돋이 구경을 가는 걸 거예요』 『그 중의 우리도』 기차는 한밤중 기적을 울리며 도시를 출발했다. 창쪽에 그녀가 앉았고, 통로쪽으로 그가 앉았다. 『내일 아침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 『지금 맑잖아요』 『여기하고 거긴 달라. 산맥 하나 너머고』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지. 서울에 있을 때 내가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도하는 게 뭔지 알아?』 『알아요』 『어떻게 알아?』 『지난번에도 얘기를 했잖아요. 하느님, 하느님, 내일 아침에 비가 오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고』 『그래. 비오는 날은 자동차를 닦으러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날 몇 번이었어요?』 『아직 한 번밖에 없었어』 『그럼 내일 그곳도 맑을 거예요』 『우리가 가니까』 『그래요. 우리가…』 『잠들면 안 돼』 『나는 안 자요』 『나도 안 자』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렇게 여행을 마련해주었구나 하는 생각요』 기차는 여덟 시간을 달려 그곳에 도착한다고 했다. 중간중간 큰 역에 도착해 잠시 멈추었다가 출발할 때마다 기차는 어떤 함성처럼 기적을 울렸다. 아직은 밤처럼 어두운 새벽에야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어두운 밤바다의 풍경을 두 사람은 가슴에 담았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와 앞으로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싶은 날들의 이야기를 손을 잡고, 또 어깨에 손을 얹고 나누었다. 그리고 동이 트는 새벽 정동진에 도착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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