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이제원/6년만에 꽃피운 군자란

  • 입력 1997년 4월 2일 15시 14분


내가 군자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부안에 살 때다. 강산이 한 번은 족히 변한 세월이다. 그 때 군자란을 처음보는 순간, 그 위엄어린 자태에 흠뻑 매료되고 말았다. 그 후로 꽃집에 진열된 군자란만 보면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 키울 욕심이 없었음은 무관심 탓일까, 게으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유로부터 자유롭게 관조만으로 자족하려는 생활신조 탓이었을까.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6년전 어느 화창한 초봄 처형께서 손수 화분 하나를 가져오셨다. 거실 가득 기품을 풍기는 진초록 군자란이었다. 청자빛 화분에 잘 어울리는 무늬가 고풍스러웠다. 봄이 가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봄의 전령으로 위풍당당한 도련님(군자)을 기대했건만 끝내 봄소식은 무산되었다. 다시 봄이 오길 고대한지 3년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되었다. 군자란의 이파리가 생기를 잃고 있지 않은가. 이리저리 알아보고 처방도 했지만 난은 영영 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아내에게 상의하니 희망을 버리지 말고 좀더 기다려 보잔다. 정성을 다하여 간호한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연초록 아기 잎새가 살며시 눈을 비비며 새생명의 노래를 구가하지 않는가.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다. 우리 내외가 다시 봄이 오기를 기다린지 3년. 베란다에 고이 간직한 난에 고사리같은 연한 꽃망울이 돋아났다고 아내는 어린애같이 탄성을 질렀다. 나도 절로 가슴이 벅차올라 행여 다칠세라 손씻고 사알짝 젖혀 보니 과연 생명의 신비가 함초롬히 눈을 뜨고 있었다. 설레는 가슴으로 주홍빛 꽃이 피어오르기를 기대하며 아내와 정성스레 거실로 들여놓았다. 예상대로 날마다 신명나는 봄의 찬미로 화음을 이룬다. 우리 온 가족은 화려하지도 야단스럽지도 뽐내지도 않는 군자란처럼 생기찬 봄을 맞고 있다. 이제원(전북 전주시 완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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