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36)

  • 입력 1997년 3월 26일 08시 25분


제7화 사랑의 신비 〈22〉 『저 산 밑에 가면 빨간 바위가 하나 있을 텐데, 그 바위 밑에는 동굴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그 동굴 속에는 삼백 년 전에 죽은 성자가 고행을 할 때 먹던 식초가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만약 남아 있다면 그 식초는 삼백 년이나 묵었기 때문에 냄새가 지독할 것입니다. 그걸 코에 대고 있으면 어떤 강렬한 꽃 향기라도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산을 내려가 성자의 식초를 구해오십시오』 듣고 있던 파리자드는 크게 기뻐하며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보니 모든 것은 불불 엘 하자르가 말한 그대로였다. 거대한 루비로 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밑에는 그다지 깊지 않은 동굴이 하나 있었다. 파리자드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동굴 안으로 들어가던 그녀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비명이라도 지를 뻔했다. 왜냐하면 동굴 안에는 살은 다 썩고 뼈와 해골만 남아 있는 유골 하나가 흡사 살아 있는 사람처럼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유골이야말로 삼백 년 전의 성자였다. 그는 꼿꼿하게 앉은 자세로 숨을 거두었는데, 그 뒤 삼백 년 동안 살은 모두 썩어 없어졌지만 뼈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파리자드는 그 유골을 보자 어떤 감동을 느끼며 말했다. 『오, 성스러운 분이여! 부디 당신께 알라의 축복이 있기를! 저는 두 오빠를 마법에서 구하기 위해 삼백 년 전에 당신이 남기고 가신 식초를 구하고자 합니다. 만약 그것이 있다면 제가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한 뒤 파리자드는 어두운 동굴 안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성자의 식초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절망에 찬 파리자드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오, 고결하신 성자여! 단 한 방울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식초를 저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성자의 유골 오른손에 파란색의 작은병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이 파리자드의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파리자드는 그것이야말로 삼백 년 동안 보존된 성자의 식초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쪽 손에 식초병을 움켜쥐고 있는 성자의 유골 모습은 그러고보니 흡사 누구에겐가 그 식초를 전해주기 위하여 삼백 년 동안을 그렇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오, 자비로우신 분! 당신은 삼백 년 동안이나 당신의 식초를 손에 쥐고 계셨군요. 이젠 제가 그것을 가져가겠습니다』 파리자드는 이렇게 말하고 성자의 오른 손에서 파란색 병을 뽑아들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지독한 식초냄새가 코를 찔렀다. 파리자드는 너무나 기뻐 성자의 해골에 입맞추었다. 그런데 그 때, 그 꼿꼿하게 앉아 있던 성자의 유골은 일시에 바스러지면서 한줌의 가루로 변하고 말았다. 성자의 식초를 구한 파리자드는 다시 산을 올랐다. 그리고는 말하는 새에게 말했다. 『불불 엘 하자르, 나의 귀여운 새야, 성자의 식초를 구했으니 이제 어디로 가면 마녀의 우물이 있는지 알려다오. 한시 바삐 마법의 물을 길어다 오빠들을 구해야겠다』 <글 :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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