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65)

  • 입력 1997년 3월 11일 0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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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는 동안 〈20〉 안에서 밖으로 함께 타고 나온 것은 몇 번 있지만, 첫날 시험 때 말고는 그날 처음으로 그녀는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교문으로 들어갔다.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 이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한편으로 병원에 오가고 침대에 누워있는 며칠 동안 섭섭하게 했지만, 그런 날들 동안 이 사람은 아침마다 역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 이미 그것을 덮고 있었다. 뒤에 앉아 허리를 잡고 상체를 기댄 그의 등이 세상의 절반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다. 『오늘은 뭐해요?』 교문에서 인문관 쪽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며 그녀가 물었다. 『아무 것도 안 해?』 『수업은 몇 시에 끝나는데요?』 『우린 세 시』 『기다려 줄래요? 우린 네 시에 끝나요』 『그래. 오늘은 그냥 집에 데려다 줄게』 그러나 그녀는 수업이 끝나면 아직 그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그와 어디론가 아무곳에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서울을 벗어난 곳이어도 좋고, 벗어나지 않은 곳이라도 좋았다. 아직은 완전하게 회복된 게 아니지만, 그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겠다는 생각을 그의 등에 가슴을 기대며 했다. 『내리고 싶은 데를 말해?』 인문관 건물이 보이자 그가 말했다. 『그냥 건물 앞에 가요』 『그래도 돼?』 『안 될 게 없잖아요』 『친구들도 있고』 『괜찮아요, 나 이제』 그는 인문관 현관 바로 앞에 오토바이를 멈추었다. 그녀가 미끄럼틀 중간에서 미끄러져 내리듯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그럼 이따가 기다려줘요』 일주일 만에 학교에 나타난 그녀 옆으로 그녀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친구들 모두 들으라는 듯이 그에게 말했다. 헬멧을 쓴 그가 경기에 앞서 선서를 하는 미식 축구선수 주장처럼 손을 들어보였다. 이제 내 곁에 저 남자가 있다,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지며 그녀의 새 서랍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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