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입회인, 대국장 준비부터 분쟁조정까지 관여

  • 입력 1997년 2월 22일 19시 52분


[김승환 기자] 서부영화의 결투장면. 총을 겨누고 생사를 다투는 두 사람 이외에 또 한사람, 입회인이 등장한다. 공정한 결투를 위한 심판관이다. 승패를 겨루는 바둑대국에서도 입회인은 중요하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한판의 바둑을 공정한 시합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曺薰鉉(조훈현)9단 같은 최정상의 기사도 최근 들어서는 입회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살아있는 기성」으로 불리는 吳淸源(오청원)9단은 제3회 응씨배 결승전에서 劉昌赫(유창혁)9단과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의 대국 입회인을 했었다. 입회인은 대국하는 두 기사에 가려 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소리없이 나타나 분쟁을 조정하고 잘잘못을 가린다. 입회인의 역할은 먼저 두 기사가 등장하기 전 대국장의 준비상황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된다. 결투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한쪽에 유리하게 대국장이 꾸며 있지 않은지를 가늠해야 한다. 한쪽이 눈부신 햇빛을 안고 싸운다든지, 지나치게 난방기가 가깝게 있다든지 하면 불공정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두 기사가 도착하면 대국시작을 선언한다. 입회인의 선언이 있기 전에 착점을 하는 것은 반칙이다. 배구에서 심판이 신호를 하기 전에 서브를 하는 것이 반칙인 것과 같다. 봉수(封手)와 대국 종료선언도 입회인의 몫. 국내에 입회인 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은 지난 89년부터다. 이전에는 중요한 기전의 도전기에서나 간혹 자발적인 입회인이 있었을 뿐 의무화된 제도는 아니었다. 한국기원은 현재 국내에서 치러지는 18개 기전의 예선전과 도전기에서 모두 입회인을 두고 있다. 중요한 특별기전이나 국제기전에서도 입회인은 꼭 등장한다. 한국기원에서 정한 입회인의 자격조건은 「만 40세 이상에 프로경력 20년 이상인 기사중 국내기전 도전기나 국제기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사람」으로 되어 있다. 현재 1백40명의 국내 프로기사중 60명 정도가 이같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 입회인이 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입회인에게 주어지는 보수는 하루에 20만∼50만원. 요즘의 프로기사가 하루 종일 일한 대가로 치면 그렇게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 기사들은 입회인을 명예로운 일이나 바둑을 위한 봉사 활동의 하나쯤으로 여기고 있다. 국제기전의 경우 입회인은 대국을 개최한 나라의 기원이 정한다. 입회인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중 하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입회인은 가장 빨리 그 바둑의 승패를 느낄 수 있다. 두 기사와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결투를 하는 사람은 포커 페이스를 지켜야 하지만 입회인은 승패의 기쁨과 슬픔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 때문에 입회인의 얼굴을 살피는 것이 그날 바둑의 형세를 짐작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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