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성교육현장/학부모 체험기]美2년거주 전종보씨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3분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대학촌 근처에 있었다. 독일 이스라엘 캐나다 일본 터키 인도 레바논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유학생과 가족들로 인종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나와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아파트 사무실에서 열리는 「엄마와 꼬마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즐겼다. 이때는 각자 집에서 간단한 간식을 가져와 나눠 먹으며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논다. 처음에는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예스」 「노」 「오케이」 등 몇마디 말만 가지고도 잘 놀았다. 백인아이들이 흑인이나 동양인 아이를 무시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기우에 불과했다. 가끔 다른 나라 엄마들이 전통요리를 만들어 초대할 때도 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그리스와 터키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외국 아이들은 내가 만들어준 잡채를 특히 좋아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처음 먹는 음식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볼 때 참을성 있게 설명해 주곤 했다. 한번은 캐나다에서 온 헤더가 우리와 미국 터키 등 세나라 가족을 캐나다에 있는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정원에서 꺾어온 꽃과 그 꽃색깔에 맞춘 촛불 그리고 음악이 곁들여진 멋진 식사였다. 헤더는 식사전 영어와 함께 터키어 한국어로 기도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을 정도로 세심하게 마음을 써줬다. 헤더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동생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며 남동생이 생전에 보내준 50년된 우리나라의 비단 조각보를 보여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린 우리 남매에게 다른 나라에도 자신들과 비슷한 꿈과 희망을 가진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가르쳐준 소중한 만남들이었다. 전종보 <미국 2년 거주> (필자는 94년부터 96년까지 해외연수를 했던 공무원 남편을 따라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살며 현지 한국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4세 12세된 남매를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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