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보수사 서둘러 덮지 말라

  • 입력 1997년 2월 15일 20시 18분


검찰은 한보비리의혹 수사를 서둘러 덮지 말아야 한다. 은행에 거액의 대출압력을 넣은 외압의 실체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선까지 밝혀내기 전에는 수사를 끝내서는 안된다. 검찰은 8억원을 받은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을 대출압력의 주범격 배후로 지목하고 있지만 은행들이 한보에 거액을 융자한 지난 94년에 그는 청와대 총무수석비서관이었다. 국민들이 홍의원의 윗선이나 배후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회의는 외압의 실체로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차남 賢哲(현철)씨를 지목하고 직접관련설을 계속 주장해 왔다. 현철씨는 자신이 당진제철소 기공식행사에 참석한 증거를 갖고 있다면서 그의 구속 또는 해외추방을 주장한 국민회의 두 의원 등을 이번 주초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한 뒤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하리라 한다. 한보사건의 외압실체규명이 고소고발사건으로 비화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은 국민회의 두 의원을 소환할 수밖에 없고, 한보사건의 배후에 「젊은 부통령」이 있다고 주장한 야권 정치인의 검찰소환도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보의혹은 대통령 아들의 명예훼손을 둘러싼 단순한 고소고발사건이라는 촌극(寸劇)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검찰은 그동안 현철씨를 간접조사한 결과 혐의가 없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조사경위와 내용을 국민앞에 공개해야 한다. 어떤 조사과정을 거쳐 혐의없다는 결론을 내렸는지도 밝혀야 한다. 검찰은 앞으로 피고소인으로 조사받을 국민회의 인사들이 어떤 형태로든 한보관련자료를 증거로 제시할 경우 고소사건의 차원을 떠나 차제에 현철씨의 한보관련 여부를 적극 수사해야 할 것이다. 한보사건은 남은 의혹이 너무나 많다. 우선 통상산업부장관을 지낸 朴在潤(박재윤)씨의 극비조사도 의혹만 증폭시켰다. 한보에 대한 대출을 감독할 입장에 있었던 행정부 인사들을 제대로 공정하게 수사했는지도 의문이다. 검찰은 홍의원 주범설만 비칠 것이 아니라 금융계에서 한보철강에 대출한 5조원 가까운 돈이 실제로 당진제철소에 투입되었는가 하는 근본문제를 파헤쳐야 한다. 철강전문가들은 당진제철소 정도의 규모라면 3조원에 지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남은 2조원은 어디로 갔는가. 鄭泰守(정태수)씨가 해외로 도피시켰는가 유용했는가, 아니면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는가. 검찰은 이러한 의혹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건국이래 최대의 권력형 금융부정사건이 몇몇 정치인과 장관 은행장 및 한보관계자 등 9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검찰은 이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수사를 해서는 안된다. 한보의혹의 핵심인 외압의 실체를 흐지부지 덮고 말면 국가적 불행이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현철씨의 명예훼손 고소사건이 세상의 웃음거리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그의 한보관련여부를 철저하게 가려야 할 책무는 검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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