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연극적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연극은 이제 상품이며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연극의 예술성과 대중적 소외 운운하는 말은 후진국적 발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연극 관객, 그중에서도 뮤지컬관객이 웬만한 프로스포츠 팬보다 많다는 말은 영국의 연극 현상을 표현하는 슬로건이다.
7년째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뮤지컬의 총아 카메론 매킨토시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걸작으로서 금세기 현존하는 최고의 뮤지컬로 손꼽힌다. 무엇이 최고인가.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또 다른 영국 본토 뮤지컬의 특징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 극중에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공연중인 허 매지스티스 극장은 원래 이탈리아 오페라를 영국에서 최초로 공연했던 오페라 하우스로 1백년 이상의 극장 전통을 자랑한다. 유럽의 뮤지컬이 19세기 오페라를 원조로 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인 입장이고 특히 「오페라의 유령」은 극중극의 배경으로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무대장치로 구성한다. 커튼의 전환과 무대장치의 이동 자체가 고전적 오페라 무대를 원 이미지로 하여 현대 메커니즘이 결합된 형식을 취한다.
무수한 커튼의 등장과 쉴새없이 바뀌는 무대는 숱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무대 바닥의 수직 상승 혹은 하강을 전환의 원리로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배우의 운동성을 극대화 시켜주기도 하고 심리적 상태를 가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해 주기도 한다. 수백개의 촛불이 바닥에서 올라오고 유령의 지팡이에서 불꽃이 나오고 배가 뜨고 극장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벽이 순식간에 거울로 변하는 등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뮤지컬의 대중적 볼거리로 제공되고 있는 이런 식의 무대 메커니즘은 쉴새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제공받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이미지 중독증을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뮤지컬을 뮤지컬답게 하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배우의 가창력과 음악성이다. 뮤지컬 배우들은 의외로 춤을 추지 않는다. 뮤지컬의 신체연기는 코러스들에게 맡기고 가능한한 노래로 무대를 장악하는 음악성을 보여 준다.
극장 체험의 중요성은 바로 이 무대 볼거리와 노래로 압축된다. 볼거리에 취하고 멜로디에 젖으면서 관객들은 일시적인 환상체험을 맛보는 것이다. 이 직접적인 환상체험이 영국 뮤지컬을 영화 이상의 대중적 인기를 획득하게한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영국 뮤지컬은 오페라라고 하는 고전적 공연미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격조가 있다. 이 격조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발상과볼거리,계속주입되는 주 멜로디의 매력, 이런 것들이 대중성을 획득하는 요소로 작용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뮤지컬은 공연예술이 미래사회 속에서도 계속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데 일단 성공한 장르다. 그러나 이 뮤지컬 장르는 양식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멜로디 외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의식의 빈약성을 드러낸다. 이 의식과 양식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미래 공연예술의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