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횡단보도]심야 운전자 대부분 신호무시

  • 입력 1997년 2월 3일 20시 28분


[특별취재팀〓홍성철 기자] 지난해 2월8일 오전 3시40분경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코코스앞 횡단보도. 포장마차에서 남자친구와 술을 마신 이영숙씨(22·가명)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택시를 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도로를 건넜다. 순간 이화동 로터리에서 쏜살같이 달려온 영업용 택시가 이씨를 덮쳤다. 1∼2m가량 뒤따라오던 남자친구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였다. 이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0여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2시경 결국 숨졌다. 사고를 낸 택시운전사는 경찰에서 『밤이 늦은 시간이라 보행자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씨가 갑자기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심야에는 보행자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각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보행자는 신호등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길을 건너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모두 2백38명. 시간대별로 통계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이중 심야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상당수에 이를 것이라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지난달 24일 오전2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전철역 근처 동아극장앞.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는데도 도로중앙 1차선으로 택시 한 대가 거침없이 질주했다. 횡단보도 앞에 일단정지한 차량들도 길을 건너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슬금슬금 진행하기 시작했다. 멈춰섰던 차들은 모두 10여대. 신호를 끝까지 기다리는 차량은 한대도 없었다. 잠시후 신호가 바뀌어 취객 한명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으나 이를 미처 보지 못했는지 검은색 그랜저 한대가 그대로 질주했다. 약 30분동안 지켜보았으나 횡단보도앞에 멈춰선 차량들은 대부분 잠시 속도를 줄였다가 보행자가 없으면 그대로 통과했다. 신호를 정확히 지키는 차량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한남대교 방향으로 1백여m 떨어진 제일생명앞 사거리. 직진 신호임에도 승합차 한대가 과감히 좌회전을 시도했다. 이에 용기라도 얻은 듯 승용차 한대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운전자 이모씨(30)는 『신호를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보행자가 없으면 뒤따라오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등 항의를 해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심야에는 보행자가 적은데도 신호등이 낮시간과 같은 주기로 들어오게 돼 있는 신호체계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동아극장앞 횡단보도는 1분간격으로 보행신호가 바뀌고 있었다. 교통선진국의 경우 횡단보도마다 「보행자 작동 신호기」가 설치돼 있어 보행자가 단추를 눌러야 신호등이 바뀌도록 돼 있다. 보행자가 없는데도 불필요하게 보행신호가 들어와 차량소통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 이 장치를 달면 운전자들은 신호가 바뀌면 반드시 보행자가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 사고 예방의 효과도 크다고 교통안전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의 경우 현재 서울남산순환도로 청와대앞길 국회앞 윤중로 남태령길 등에서 이 장치를 운용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교통안전과의 朴漢福(박한복)경사는 『심야에는 신호등이 설치돼 있지 않은 횡단보도에서도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운전자들이 보행자들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면 심야라고 해서 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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