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33)

  • 입력 1997년 2월 3일 20시 07분


독립군 김운하〈4〉 『왜요?』 독립군이 두 손을 뻗어 누르듯 핸들을 잡은 채 물었다. 『난 댁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때에만 독립군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얼굴도 알아두고 싶어서요. 그래야 이 다음 오토바이 없이 마주치더라도 인사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자, 그럼 봐요』 그는 왼손으로 헬멧을 벗었다. 헬멧에 머리가 납작하게 눌리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준수한 얼굴이었다. 학교까지 오는 중간 언뜻언뜻 보였던 장난기가 어느 구석에 숨어 있었던 건지 모를 정도로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이름은 김 운 하 고. 나도 댁의 이름 물어봐도 돼요?』 『채서영이에요』 『이제 그만 들어가 봐요. 페이퍼라도 만들자면 일초가 아쉬울 텐데…』 그러면서 그는 다시 헬멧을 눌러쓰고 그대로 오토바이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그것이 독립군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나 이미 기말고사 중이어서 학기 중엔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시험을 마치면 바로 방학이었다. 이학기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한동안은 학교 앞길에서고 교정에서고 언제나 낡은 헬멧을 쓰고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그를 언뜻언뜻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다소 과장되고 부풀려졌을 독립군의 독립전사에 대해 몇 마디 얻어들었다. 그 오토바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전에 군에 가기 전에도 그는 지금처럼 아주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독립군이라는 별명도 그런 낡은 오토바이와 또 언제나 그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학교 이곳저곳을 누비듯 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 기동력이 좋을 테고, 그러니까 학교 안에서도 쉽게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부분 그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 그러는데」로 시작해 「누가 봤는데」로 끝나기 일쑤였다. 방학 때에도 그는 그 오토바이를 서울에 두지 않고 그것을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개학하면 다시 그것을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고 했다. 독립군 앞에 「청산리」라는 말이 붙은 것도 입대 전 학교 앞에서 벌어진 어떤 시위 때 오토바이를 타고 최고 속력을 올린 채 그대로 전경들의 방어진을 뚫고 나간 기록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그 독립군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니?』 같은 과의 친구가 물었다. <글: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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