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25)

  • 입력 1997년 1월 26일 20시 07분


짧은 봄에 온 남자 〈7〉 아저씨는 저녁 늦게야 회사 앞으로 나왔다. 처음 아저씨가 말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쯤은 더 밖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그러니까 찻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러면 아저씨가 더 늦게 나올 것 같아서요』 함께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아저씨는 찻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그녀가 나도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는 어른이라고 말했다. 어른인 걸 보여주고 싶어 아저씨가 잔을 비울 때마다 그녀도 지지 않고 따라 비웠다.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마음 속에 전에 없던 용기같은 것이 생기는 것도 그렇게 비운 맥주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영아』 『예』 『이젠 나오지 마』 『아뇨. 아저씨가 그러면 전 또 나와요. 저는 아저씨가 왜 저를 피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저씨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많아요. 아저씨는 한 번도 아저씨 이야기를 하지 않았잖아요』 『뭐가 알고 싶은 거지?』 『아저씨에 대해서 모든 걸 다요. 제게 아저씨의 편지는 늘 쓸쓸했어요. 마지막 편지에 뭐라고 쓴 줄 아세요? 두 번이나 지리멸렬이라고 썼어요. 공부도 생활도 지리멸렬이라고. 그래서 귀국하는 거라고』 『그래…』 애초 불문학을 공부했고, 그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혼자 파리로 갔고, 그러기 전에 아내와 별거를 했고, 그러는 동안 아내가 아이를 맡았으며, 이년후 아내가 재혼을 하며 아이를 부모님께 보내자 예정을 바꾸어 서둘러 귀국한 것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술집에서 나와 조금은 취한 걸음으로 거리를 걸으며 별도 없는 하늘을 쳐다보며 그 이야기를 했다. 서영은 슬픈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파리에서 편지를 주고 받을 땐 난 서영이가 늘 아이인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요?』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제 서영이에게 편지를 쓸 수 없겠구나 하는 걸 알았던 거구』 『제가 아저씨 편지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글: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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