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경제회생 앞장』 공허한 구호

  • 입력 1997년 1월 7일 08시 30분


『요즘 어떠십니까』 『죽을 맛입니다. 내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후회돼요』 6일 오후5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중소기업인들의 푸념섞인 얘기다. 지난해 2백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적자에 노동계 총파업 등으로 식전부터 깔린 무거운 분위기는 행사중에도 계속됐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새해 무역수지 전망을 묻자 具平會(구평회)무역협회장은 『우선 무역업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다』고 운을 뗀 뒤 『올해는 적자를 1백50억∼1백80억원에서 잡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사문제 타결 등 국내여건이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崔鍾賢(최종현)전경련회장도 『만성적인 고(高)비용체제를 극복하고 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사가 협력, 금년도 노임인상을 최대한 억제토록 노력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그러나 임금인상 억제를 위해 노사가 「협력」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이어 김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재계 참석자들은 7일로 예정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 앞서 뭔가 주목할 만한 내용이 나올까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대부분 상공인들의 희생과 분투를 당부하는데 할애됐다. 『산업현장에서 노사가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아 주름진 경제활동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단기간내에 10%이상 높아질 수 있도록 기업의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저는 대통령 취임이래 「변화와 개혁」을 통해 국가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관계법 개정에 항의, 초청됐던 노동계 대표들이 불참한 이날 자리에서는 대통령의 이같은 「구호」는 설득력이 없어보였다. 치사를 마치고 자리를 뜬 대통령의 빈 자리에 한 기업인의 독백이 메아리쳤다. 『근로자들이 당장 파업하겠다고 나서는데 뭘 앞장서겠다는건지 모르겠네요…』 鄭 景 駿<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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