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1996년,잃어버린 꿈

  • 입력 1996년 12월 27일 21시 29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9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저는 신한국 창조의 꿈을 가슴 깊이 품고 있습니다. 누구나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가 신한국입니다. 우리 모두 이 꿈을 가집시다』 그로부터 3년 10개월, 1996년 세밑에 「신한국」은 간 곳이 없다.「신한국」은 없다 ▼「신한국」은 없다 ▼ 세찬 한파 몰아치는 동지섣달, 시린 목 움츠리고 거리를 배회하는 명퇴자(名退者)들에게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신한국은 없다. 갓 잠자리에서 일어난 시민들이 주섬주섬 조간신문을 들추는 새벽, 관광버스로 국회의사당에 실려가 로봇처럼 기립 착석을 반복하며 도둑질하듯 11개 법안을 7분만에 변칙처리한 여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사람도 많지 않다. 신한국은 신한국당이라는 집권여당의 당명(黨名)에서나 허구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미 꿈조차 잃어버린 느낌이다. 김대통령은 신한국 창조를 위한 개혁의 3대 과제로 부정부패의 척결, 경제의 회생, 국가기강의 확립을 제시했다. 1996년 한해는 그 개혁의 세가지 꿈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물거품이 됐음을 절망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회생시키겠다던 경제가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2백2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고 외채가 1천억달러를 돌파했다. 작년 9%이던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올해 6%대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산이고 기업의 도산과 감량경영으로 실업자가 40만명에 육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고 떠벌리기에 앞서 한국경제의 중남미화를 걱정해야 할 형국이라는 경고가 섬뜩하다. 부정부패와 사회기강 해이는 다시 말할 것도 없다. 張學魯(장학로)사건 李養鎬(이양호)사건 안경사협회사건 등이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뿌리부터 흔들었고 은행장비리 공정거래위원회비리 증권감독원비리 서울시버스비리 등 굵직한 부정에다 나열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하위공직자 비리가 날마다 줄을 이었다. 개혁은 물건너 가고 남은 것은 무분별한 과소비 사치 퇴폐 무질서뿐이었다. ▼ 民草 엄중한 심판 ▼ 이 추락하는 사회를 지탱하고 건져 올려야 할 정치는 온통 내년 대통령선거라는 때이른 권력투쟁에 몰입해 있었다. 4.11총선도, 검경중립화 등 제도개선도,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줄다리기도 여야의 궁극적 목표는 내년 대통령선거였다는 지적이다. 경제와 민생은 안중에 없었다. 그 비극적 결말이 울적한 세밑을 더욱 침통하게 만든 신한국당의 후안무치한 날치기였다. 정치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김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정치, 국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정치, 국민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정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1996년을 일관한 정치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정치, 국민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정치,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는 정치였다. 내년에는 대통령선거를 위한 정치가 더욱 판을 칠 것이다. 남은 선택은 이제 하나, 분노한 민초들의 엄중한 심판밖에 없게 됐다. 김 종 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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