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세계]『요즘엔 부하직원이 상전』

  • 입력 1996년 12월 22일 20시 19분


「李英伊·林奎振기자」 대우그룹 비서실 P이사는 연말이 다가오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과장시절만 해도 부장과 담당임원집에 인사다니느라 신정연휴를 다 소비했는데 요즘엔 거꾸로 부하직원들에게 인사해야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올해는 직원들에게 책선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요즘 직원들의 취향을 알아보고 있다. 다소 감상적인 Y과장에겐 소설책을, 야심만만한 K대리에겐 미래경영 학술서를 선물할 계획이다. 삼성그룹 K부장은 10년전 대리시절만 해도 연말연시엔 부인까지 대동하곤 상사집에서 보내는 것을 당연시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부하직원이 상사를 평가하는 「상사평가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직원들에겐 섭섭지않게 선물을 해야 하는 처지다. 10여명을 거느리고 있는 그는 지난 추석때 남자직원에게는 5만∼10만원짜리 상품권을, 여직원에겐 스카프를 선물했다. 선물비용만 70만원의 생돈이 들었다. K부장은 올 연말선물은 무엇으로 해야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불황으로 특별보너스가 없어지는 바람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아끼던 후배 2,3명에게 도서상품권을 나눠주는 선에서 연말을 넘길까 생각중이다. P이사와 K부장에겐 어느새 연말연시가 우울한 시간이 돼버렸다. 제일제당은 연말연시에 상사집을 찾는 것이 금기시돼있다. 찾아가봤자 혼나기만 하고 소문이라도 나면 인사상 불이익까지 받는다. 심할 경우엔 동료들 한테 「간신배」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상사와의 만남은 평소에 하라는게 회사측의 주문이다. 다만 거래처 관계자나 만나지 못했던 퇴직임원 등을 만나기위해 직장동료 몇몇이 연초인사를 가는 경우는 있다. 이 경우에도 선물은 과일 한꾸러미에 그친다. 중앙개발과 한솔은 모든 임직원들에게 참기름세트와 육가공 선물세트를 각각 보내기로 하고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신년하례식이 준비되어 있으므로 「과공」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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