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44)

  • 입력 1996년 12월 16일 19시 56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34〉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 길고 지루한 열흘이 지나자 저의 여자는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그동안에 시녀들은 기가 막힌 진수성찬들로 식탁을 차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식탁에는 닭의 가슴패기 살을 넣은 한 그릇의 카민 시추가 있었습니다. 설탕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가미하고, 사향과 장미수 따위로 물들인 것이었는데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갈 만큼 먹음직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 앞에 앉아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카민 시추로 실컷 배를 채운 뒤 저는 손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물로 씻는 것은 잊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찾아들자 휘황찬란한 촛불들이 켜지고 가희들은 탬버린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에 걸쳐 옷을 갈아입히며 신부를 선보였습니다. 가희들의 탬버린에는 금화들이 가득 찼고, 그녀들은 신부를 저에게로 데리고 와 옷을 벗기고 속살이 훤히 내비치는 잠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이윽고 우리 두 사람만 남겨졌을 때 저는 이게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신부의 잠옷을 벗기고 침상에 쓰러뜨린 뒤 그녀를 그러안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신부는 갑자기 새된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큰 소리로 부르짖었던지 노예 계집들이 사방에서 우르르 달려들어왔습니다. 저는 영문을 몰라 하며 그저 멍청히 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래요, 언니?」 노예 계집들이 저의 신부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는 노기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 미치광이를 저쪽으로 데리고 가줘. 변변한 사내인 줄로 알았는데 알고보니 순 미치광이야!」 신부의 이 말을 들은 저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말했습니다. 「내가 어째서 미치광이란 말이오?」 그러자 저의 신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카민 시추를 먹고 손도 씻지 않다니, 이런 미치광이가 어디 있어? 알라께 맹세코 그냥 두지 않겠어. 당신 같은 더러운 손을 한 사내가 나와 같은 여자와 함께 자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야」 그제서야 저는 사태를 깨달았습니다. 저의 손에서 나는 역겨운 고깃국 냄새를 맡은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채찍을 손에 감고 내 등과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갈겼습니다. 저는 그녀의 그 너무나도 매서운 채찍질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사내를 경비대장한테로 끌고 가 카민 시추를 먹고도 씻지 않은 손을 잘라달라고 해줘」 여자는 시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소리쳤습니다. 「알라 이외에 주권 없고 권력 없도다! 카민 시추를 먹고 손을 씻지 않았다고 해서 손을 자르겠다는 말입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자 시녀들도 제편을 들어, 신부의 손에 입을 맞추며 말했습니다. 「언니, 이분은 뭘 몰라서 그런 것 같으니 이번만은 봐주세요」』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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