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황의 성탄 강론도 인터넷에 오른다. 성 베드로광장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올해부터는 가상공간에 중계되는 것이다. 인류의 삶에 파고드는 인터넷의 위력을 보여준다.
개신교들도 나름의 홈페이지를 띄운지 오래다. 석가모니의 고행, 대자대비의 정신도 불교 홈페이지에 올라있다.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사이트도 있다. 이슬람 사이트는 「칼아니면 코란」대신 인터넷상의 코란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가상공간의 피 안흘리는 종교전쟁만 같다.
▼쏟아지는 홈페이지▼
가르침과 복음만 뜨는 것은 아니다. 갱들의 홈페이지도 있다. 경찰의 유효 사거리를 피해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다. 「안전하게 마약을 파는 방법」 「좋은 총 고르기」 「갱답게 옷입기」같은 비방도 온라인상에 올라있다. 사이버갱들에게는 국경도 의미가 없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갱들은 멀리 뉴질랜드의 통신업체에 가입해 인터넷에 오른다.
정치에도 인터넷은 필수다. 백악관이나 일본 총리실이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경쟁을 벌인다. 북한도 5일부터 인터넷에 데뷔하리라는 얘기다. 북한 중앙통신 창립50주년을 기념, 체제선전을 위해 홈페이지를 연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 세기말 문명의 한 상징이요, 삶의 한 주변부다. 책이나 신문 도서관같은 활자 정보매체가 주류이던 시절에는 무한대의 정보를 축적하고, 그것을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디지털 혁명이 그러한 기적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인터넷을 꽃피우고 있다.
인터넷이 나타나기도 전인 70년대말 독일의 미래학자 게오르그 피히트는 인류의 정보 지식의 가속적인 축적에 관한 흥미로운 가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인류의 지식축적이 기원5백년전쯤, 그러니까 공자 석가 마호메트가 활동하던 때 부터라는 통설에 터잡아 말한다.
피히트는 19세기까지의 지식 축적량을 1이라는 단위로 잡는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1900년부터 1950년까지 반백년 동안 쌓인 지식정보의 양은 2단위라고 보았다. 그 이전의 모든 세기동안 누적되어온 것과 50년치가 맞먹는다는 주장이다. 더 놀라운 얘기는 1950년 이후부터는 15년마다 4단위, 8단위식으로 가속도를 보이며 증가한다는 대목이다.
광케이블이나 CD롬같은 것이 존재하지도 않던 종이와 활자시대의 얘기다. 하물며 『인터넷상에 하루에 오가는 정보만 몇 기가』라는 오늘의 현상에 비추어 보면 더 무엇을 말하랴. 「정보의 바다」라고들 하지만 「노트」의 속도로 배가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광속(光速)만이 통하는 「정보의 우주」라고 해야 그 빠르기와 넓이가 실감난다.
인터넷으로 집약되는 「버추얼」 「사이버」문화가 삶의 형태를 뒤바꾸고 흔드는 시대, 그것들은 사람에게 보람과 행복만을 안길 것인가. 음란 포르노 사이트처럼 쓰레기도, 갱 사이트같은 종양도 걸러지지 않고 안방에 들어온다.더 두려운 것은 참과 거짓을 가리기 어려운 내용들이 쏟아진다는데 있다.
▼「빠지기」앞서 「거르기」를▼
인터넷에 떴다는 이유만으로 사실 진실이거나 진리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시대는 그런 착각을 안긴다. 버추얼이라는 영어의 본뜻이 「겉으로 그렇지 않지만 힘 효과면에서 사실상의」라는 데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사이버라는 말에도 「인공으로 제어」하는 뉘앙스가 배어있음을 주목하자.
정보가 해일처럼 밀려오기 때문에 더욱 의심스러워져야 한다는 건 참으로 인간의 슬픈 운명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보에 귀와 눈을 내맡겨도 그다지 속지 않던 시대는 갔다. 쓰레기와 종양조차 뒤범벅이 되어 「고르기」가 더욱 고통일 수밖에 없는 인터넷 시대가 와 버렸다.
김 충 식<정보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