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건축]프랑스 클뤼니박물관…「파리 2천년」한자리에

  • 입력 1996년 10월 29일 20시 27분


「글〓홍찬식기자」 로마제국의 위용은 1천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유럽대륙 곳곳에 남아있다. 파리 한복판 시테섬(노트르담대성당이 있는 곳) 근처에 있는 국립클뤼니박물관은 중세시대 예술품만을 모아 전시하는 곳. 박물관안에서도 로마시대의 유적이 발견되는데 파리를 정복한 로마인들이 서기 200년경 건립한 대형 목욕탕이 그것이다. 로마유적이 박물관 건물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가 안갈 수 있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이해가 간다. 이 목욕탕은 서기 300년경 다른 민족의 침입에 의해 파괴돼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15세기 프랑스 중부에 있는 클뤼니수도원이 평소 파리와 왕래가 잦은 소속 수도자들의 숙소를 파리중심부에 마련키 위해 폐허자리에 건물을 세우게 된 것. 이때 수도원측은 로마유적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 건물을 짓는 「재치」를 발휘했다. 비록 정복자가 남긴 것이기는 하지만 역사성있는 문화유적에 대한 배려였다. 이 숙소를 지은 건축가는 로마유적과 수도원 숙소를 아예 같은 건물로 만들었다. 목욕탕이 폐허가 되는 과정에서 붕괴됐던 벽이나 지붕을 다시 세우고 바로 이어 붙여 숙소 건물을 세운 것이다. 이후 이 건물은 부호 알렉산드르 뒤 소메라르에게 넘어갔고 평소 예술품수집에 열성적이었던 그는 1833년 자신의 수집품을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 그가 사망한후 프랑스정부가 건물과 수집품을 함께 인수, 1843년 국립클뤼니박물관을 설립했다. 아담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숙소건물은 15세기 고딕풍으로 설계됐으며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로마시대 목욕탕과 바로 연결된다. 현재 목욕탕쪽에는 파리일대에서 발견된 로마시대의 조각들이 진열돼있으며 숙소쪽에는 중세시대의 회화 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다. 파리는 기원전 55년 로마군대가 쳐들어올 당시 시테섬을 중심으로 이뤄진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지명도 라틴어로 「강중류에 있는 거류지」란 의미의 루테티아였다. 이 목욕탕 주변지역이 과거 로마시대의 중요한 군사주둔지였으며 이곳을 축으로 로마의 식민도시가 건설됐음은 물론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파리를 있게 한 주역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로마제국인 셈이다. 파리뿐 아니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영국의 런던에서도 로마도시의 유적이 발견됐다.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던 로마시대 유적에 훗날 새 생명을 부여한 프랑스인들의 자세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들은 옛 유적에다가 과감하게 새 건물을 덧붙임으로써 문화적 포용력을 과시하는 한편 로마시대때까지 파리의 역사를 확장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어냈다. 로마와 중세 프랑스의 건축이 공존하고 있는 이 건물은 그런 점에서 천년건축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이 유적은 저녁시간이면 음악 연극 등 다목적 공연장으로 사용돼 파리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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