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 칼럼]결탁-음모-배신

  • 입력 1996년 10월 25일 20시 51분


저질도 이런 저질이 없다. 삼류소설에는 그래도 허여멀쑥한 주인공이라도 있고 가끔 가다 침이라도 꼴깍 삼킬 장면이 양념처럼 섞이기도 한다. 이 실화에는 그것도 없다. 처음부터 삼류 배역들의 음흉한 결탁 배신 음모가 얽히고 설켜 금방 들통날 속 뻔한 수를 복선이랍시고 요리조리 까는 작태가 불쾌하고 메스껍다. 그 저질실화를 날마다 신문에서 읽어내야 하는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라고 마지못해 읽어야 하는 처지가 딱하기만 하다. 세상살이를 이렇게 소태맛으로 만들어버린 당사자들이 엊그제까지 이 나라 60만대군을 호령하던 전직 국방장관과 그를 협박해 한몫 챙기려다 제 덫에 걸려버린 무기중개상이라는 이름의 사나이다. 그들의 한심한 삼류놀음을 보고 있노라면 이 시대 이 땅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 이민이라도 떠나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양식·자존심실종 사람에겐 누구나 최소한의 양식과 자존심이 있는 법이다. 이 실화에는 그것이 없다. 진급시켜 달라고 돈 주고 메모 써주며 대통령 딸에게 선을 댄 장군이나, 이를 미끼로 5년동안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한건 해내라고 협박한 사나이나, 그 틈새에 끼어들어 몇억원인지 바쳤다가 사기당했다고 발뺌하는 기업이나, 실로 난형난제다. 혼자 먹었느니 둘이 나눠 먹었느니 오물 던지기 싸움판이나 벌이기에 꼭 알맞은 수준들이다. 스토리는 배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국방장관과 한통속이던 무기상이 이권분배를 놓고 등을 돌려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들쑤시고 다닌 것부터 그렇다. 양심의 명령에 따라 자기 한몸 희생을 각오하고 정정당당하게 고발한 것이 아니다. 국방장관이라는 사람도 배신자이기는 같다. 군을 배신하고 국민을 배신하고 개혁을 배신했다. 한쪽 배신자는 외국에서 기자회견 하고, 언론사에 팩스 보내고, 대검 중수부장과 전화까지 하면서 제2, 제3의 폭로를 위협한다. 배신에서 시작된 폭로가 정치와 사회를 진흙탕으로 밀어넣는 이땅에서 정의를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메스꺼운政治圈 정치권의 대응도 메스껍기는 매한가지다. 기껏 한다는 짓이 상대방 뒤통수치기, 빈정거리고 비위건드리기, 시시껄렁한 말꼬리 잡기다. 음모와 모략의 술래잡기 놀이나 벌일뿐 문제의 핵심과 본질에 대한 진지한 추적과 반성이 없고, 그 창자까지 썩어버린 총체적 부패를 치유할 처방 한장 내놓지 못한다. 정치 자체가 이미 수치심을 상실했다. 이 사술(詐術)이 판치는 정치에 대한 혐오 불신 허탈을 보상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한마디로 오늘의 안보 경제위기 속에서 표류하는 사회를 안전하게 저어나갈 삿대가 없다. 달아 올릴 돛대도 없다. 한차례 격랑이 지나면 또 한차례 격랑이 닥치고 그때마다 배는 심하게 흔들린다. 사공들은 제각기 너때문에 난파한다고 뒤통수를 친다. 이런 일들은 이제 마감하면 좋겠다. 모두 제자리 찾아 돌아가 정직 신의 희생으로 제 이름자 하나 고스란히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가장 보람있는 삶이라는 확신을 정치가 모두에게 키워줄 수 있을 때 나라가 바로 설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 종 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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