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89)

  • 입력 1996년 10월 18일 22시 12분


불행한 채로 행복하게 살기〈37〉 여관 주인에게 사정을 얘기하는 순간에도 내 방광은 터져버릴 듯이 뻐근했다. 나 는 우산을 내던지고 주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화장실 쪽으로 발소리를 내며 뛰쳐 들어갔다. 그렇게 절박했던 것과 달리 나의 볼일은 너무나 짧았다. 여관을 나오며 나는 그제서야 선배에게 무안한 마음이 들었다. 골목 끝의 큰길에 서 기다리고 있는 선배에게 다가가는 내 얼굴은 약간 어색했다. 선배는 누군가와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인사동 쪽에서 낮술을 걸쳤는지 얼굴이 발그레했다. 낯이 익었다. 선배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의 눈길이 노골적 으로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어쩐지 내 옷매무새를 보는 것만 같아서 나는 당황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여관 주인에게 민망해서 급히 나오느라 스커트 지퍼라도 제대 로 못 올린 것은 아닌지 지레 불안해진 나는 슬그머니 스커트 고리쪽을 만져보았다. 그날 밤 상현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아내가 선배라는 놈 하고 여관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본 사람에게 모든 얘기를 다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오해를 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설명도 다 그 오해에 딱 들어맞게 해석할 수 있다 는 것을 알았으므로 나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날과 달리 상현을 피해서 현관 밖으로 나가려고 한 것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지 상현의 판단대로 「제 발이 저려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현관 앞에서 머리채를 잡힌 나는 거칠게 그를 뿌리쳤다. 『이것 놔!』 『뭐라고? 이년이 이제 순 배짱이네? 막 가겠다 이거지? 오호, 그 새끼가 살림이 라도 차리자고 했나보지?』 식식거리는 그의 눈은 바로 내 눈앞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흥분한 사람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되도록 천천히 말했다. 『뱃속에 애가 있으니까 나 좀 가만 놔둬』 그러나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내 눈앞에서 상현의 눈이 완전히 뒤집히며 광기로 번뜩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의 발길질은 내 배를 똑바로 조준하여 증오라는 폭발력을 갖고 발사되었다. 그날 밤 아이는 유산되었다. <글 :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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