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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버럭호철’에서 ‘섬세호철’로…V리그 명장이 그리는 IBK의 미래는?

입력 2021-12-24 16:06업데이트 2021-12-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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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은 인정하고 잊자.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자.”

지도자 경력만 26년인 김호철 신임 감독(66)은 16일 IBK기업은행 선수단과의 첫 만남에서 이 같은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신부터 일절 선수들에게 지난 이야기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밖에서 들은 이야기도 많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루빨리 팀을 정상화할까란 생각 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구단에서 불거진 내홍 사태에 대해서는 “본분을 지키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답했다.

버럭호철에서 섬세호철로


22일 경기 용인시 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김 감독은 약 1시간의 인터뷰 시간 동안 ‘섬세’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과거 남자부 지도자 당시 ‘버럭호철’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수들을 호되게 다뤄온 그에게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단어였다. 지도자 생활 중 처음으로 여자부 감독을 맡게 된 김 감독은 “구단의 제안을 받고 하루를 고민했다. 사실 배구는 (어디나) 똑같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내 스타일이 선수들에게 통할까 싶었다. 여자 선수들의 섬세함을 따라갈 수 있을까란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딸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 “사고치는 것 아니냐며 만류한 아내(여자배구 대표 출신 임경숙 씨)와 달리 딸(배구선수 출신 김미나 씨)은 ‘아빠, 할 수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하더라. 사실 배구에서 (현역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세터만큼 섬세한 포지션도 없지 않나”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스로도 노력 중이다. 18일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기업은행 감독 데뷔전을 치른 그는 “경기 내내 카메라가 내 욱하는 표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속으로 ‘화내지 말자’는 생각만 했다. 마스크로 표정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경기 뒤 대신고, 한양대 선배인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70)에게 ‘여성들을 위한 심리학’ 등 여성 관련 책 2권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21일에는 2년차 센터 최정민(19)의 생일을 맞아 장미꽃 20송이를 직접 선물해 선수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선수들과의 ‘마니또’ 놀이의 재미에 빠져있기도 하다. 모두 남자부에서는 해보지 못한 경험들이다. “앞으로 선수 생일 때마다 꽃집에 가게 생겼다”며 엄살을 떠는 김 감독의 모습에서 섬세호철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선수가 주인공이 되는 배구 하겠다”


V리그 대표 명장인 김 감독이 바꿔놓을 팀의 새로운 모습도 기대를 모은다. 당장 김 감독의 두 번째 경기인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2-3패)에서 풀세트 접전을 이어가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도 “앞으로 기업은행의 전력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경계를 드러냈다.

세계적인 명 세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 감독이 조송화(28) 이탈 후 팀의 새 주전 세터가 된 김하경(25), 3년차 이진(20)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을지도 팬들의 관심거리다. 김 감독은 “세터 출신 감독이 팀에서 가장 만족하기 어려운 포지션이 세터다. 두 선수 모두 당분간 고생할 것. 당장 기술적인 변화보다는 실전 경험이 적은만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센터 자리를 주로 맡았단 김희진(30)은 라이트로 주로 기용할 계획이다. 새 외국인 선수 산타나(26)의 경우 올해 소속팀 없이 개인훈련만 하면서 아직 체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만큼 약 한 달 뒤에나 풀타임 출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세트 막판 승부처 상황에 주로 투입할 전망이다.

새 출발선에서 첫 걸음을 뗀 김 감독에게 목표를 물었다. 김 감독은 “선수생활 마지막 3년을 남겨놓고 비로소 배구의 재미를 깨달았는데 막상 감독이 돼 그 재미를 모르고 살았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시켜서 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수들이 스스로 재미를 느껴서 배구를 하는, 감독보다는 선수가 주인공인 그런 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 천직은 배구”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오랜 고민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용인=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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