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올림픽서 ‘디그 1위’ 오지영 “이 멤버로 한 경기만 더 뛰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3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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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 경기(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를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왔는데 ‘이 팀으로 더 경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소리에는 지난 여름날의 희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전 리베로로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던 오지영(33·GS칼텍스)은 11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끝나고 보니 올림픽 기간 동안 하루하루가 행복했었는데 왜 그땐 그저 ‘버텨야 돼’란 생각만 했는지 모르겠다. 귀국 후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배구 김연경(오른쪽부터)과 박정아, 오지영이 4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득점을 획득한 후 기뻐하고 있다. 2021.8.4/뉴스1 © News1
배구 김연경(오른쪽부터)과 박정아, 오지영이 4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에서 득점을 획득한 후 기뻐하고 있다. 2021.8.4/뉴스1 © News1
도쿄 올림픽에서 9년 만의 4강 진출을 이루기까지 대표팀은 남모를 눈물을 흘렸다. 그중에서도 서른셋의 나이에 첫 올림픽 꿈을 이룬 그는 누구보다 많은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올림픽 직전 열린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경기력 부진으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앞서 두 차례 은퇴 선언 뒤에도 다시 코트로 돌아왔던 그는 “배구 인생에서 이렇게 멘털이 흔들린 건 처음이었다. 팀에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출국 직전까지 감독님 방에 찾아가 리베로 교체해 달라는 말을 할 생각을 수십 번이나 했다”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대회 전까지 큰 부담을 느끼면서 첫 경기인 브라질과의 조별예선에서 손발이 덜덜 떨리는 채로 들어갔다고 한다. 대회 기간 중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주장이자 1년 선배 김연경(33)의 어깨 위 짐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는 “혹여 언니의 패턴을 깨뜨릴까 봐 ‘언니 힘내’라는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언니 말대로 코트 위에서 더 소리 질렀다. 후배들이 따라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 결과 그는 이번 대회 디그 1위(93개)를 차지하며 4강 진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첫 올림픽의 경험은 달콤했다. 대표팀 막내이자 룸메이트 정지윤(20)과 함께 선수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개회식에 참석해 세계 각국 선수들과 나눈 기념핀을 모아 액자에 끼워 간직했다. 팀원들 사이에서 ‘올림픽을 제일 잘 즐기는 건 오지영과 정지윤’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선수촌에서 유명 스포츠 스타를 봤냐는 말에 그는 “마스크를 써서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더라”며 “대스타(주장 김연경)가 우리 바로 옆에 있어서 누군들 부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9일 인천국제공항에 몰린 수백 명의 환영 인파를 보고 “연경 언니는 이렇게 살아 왔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4강에서 만난 브라질의 16번 공격수 페르난다 호드리기스(35·레프트)를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로 꼽았다. 그는 “분석한 코스대로 공이 와도 파워가 워낙 세서 공에 손이 닿질 않았다. 허벅지에 그 선수가 때린 공을 맞았는데 다음 날 보니 피멍이 들어 있더라”고 말했다.

사진=오지영 제공
사진=오지영 제공
꿈만 같은 올림픽을 마친 뒤 4개월 만에 충남 당진 자택에 돌아가 휴가를 보낸 그는 13일 팀에 합류해 23일 시작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컵 대회 여자부 경기 준비에 나선다. 지난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 이소영(27)의 보상선수로 KGC인삼공사에서 GS칼텍스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처음 맞는 시즌이라 새로운 의욕이 넘친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팬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았어요. 다시 본캐(본캐릭터)인 배구선수로 돌아가 좋은 모습 보여 드릴게요.”

어떤 공이 오더라도 받아내겠다는 자신감으로 들렸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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