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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발리볼 비키니

김연경은 쌍둥이가 빠진 뒤 얼마나 못했나? [발리볼 비키니]

입력 2021-03-18 11:56업데이트 2021-03-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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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김연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끝까지 뚜껑을 다 열어봤지만 결국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정규리그에서는 그랬습니다.

이다영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흥국생명에 합류한 뒤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그래도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고 하는 데 열 필요도 없다”면서 자신만만해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배구 여제’ 김연경이 팀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전인데도 그랬습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인터뷰 중인 이재영(왼쪽)-다영 쌍둥이 자매. 뉴스1 유튜브 화면 캡처

그러나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다영은 뚜껑을 다 열어 보지도 못한 채 쌍둥이 언니 이재영과 함께 코드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탓에 김연경 혼자 남은 뚜껑 여덟 개를 열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승점’이 나온 뚜껑은 두 개밖에 없었고 나머지 여섯 개는 전부 ‘꽝’이었습니다.

●공격 효율 0.364 → 0.295
일단 뚜껑 여덟 개를 여는 동안 김연경이 그 전만 못했던 건 사실입니다. 김연경은 2월 5일 GS칼텍스전까지 프로배구 2020~2021 V리그 여자부 22경기에서 공격 효율 0.364(1위)를 기록했지만 이후 8경기에서는 0.295(6위)에 그쳤습니다. 그러니 “김연경이 조금 더 결정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잘못된 지적이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공격 효율이 떨어진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세터 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다영은 김연경이 공격 효율 0.380을 기록할 수 있도록 공을 띄워주는 세터였습니다. 이다영이 공을 예쁘게만 올려주면 김연경이 알아서 예쁘게 요리하는 게 가능했던 것.


반면 김다솔은 김연경으로부터 공격 효율 0.311을 끌어내는 데 그쳤습니다. 기본적인 세팅 능력 자체가 김다솔이 이다영보다 한 수 아래인 데다 김연경과 호흡도 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이다영이 다른 선수에게 공을 띄웠을 때 공격 효율은 0.266이었습니다. 김연경에게 띄우면 이 기록이 42.9% 올랐습니다. 반면 김다솔은 0.245에서 26.9%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찬스 볼’이 ‘하이 볼’로 바뀌는 장면. KBSN 중계 화면 캡처

단, 공격 효율 0.295 자체가 아주 못한 성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공격 점유율 15% 이상을 선수 가운데 공격 효율이 0.295 이상인 선수는 △현대건설 양효진(0.366) △흥국생명 김연경(0.349) △GS칼텍스 이소영(0.314) △GS칼텍스 러츠(0.303) 등 네 명밖에 없습니다.

김연경이 ‘그 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성적도 가장 강력한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손꼽히는 이소영 바로 아래 레벨이었던 겁니다. 그것도 사실상 생애 처음으로 주전 구실을 맡은 데다 자신과 호흡이 잘 맞지 않는 세터가 띄운 공을 때려서 남긴 기록입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전·후위에 따라 다른 팀
문제는 김연경을 제외한 나머지 흥국생명 선수들은 병따개 사용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겁니다. 브루나는 이씨 쌍둥이 자매가 빠진 채 치른 여덟 경기에서 공격 효율 0.141을 남겼습니다. 이 기간 리그에서 공격 효율이 가장 떨어진 선수가 바로 브루나입니다. 이 여덟 경기에서 흥국생명 공격 시도 가운데 14.5%를 책임진 김미연도 공격 효율 0.174가 전부였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연경이 전위와 후위에 있을 때 흥국생명은 다른 팀이 됩니다. 김연경이 전위에 있을 때는 팀 공격 효율 0.260으로 이 기간 리그 평균(0.264) 수준은 됐습니다. 김연경이 후위로 가면 이 기록은 0.183으로 내려갑니다. 리그 평균 기록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입니다. 이러고도 팀이 잘 나간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입니다.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 나타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상대 블로킹에 맞고 돌아오는 공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는 흥국생명 전체 공격 시도 가운데 13.4%가 다시 흥국생명 코트로 돌아왔는데 김연경이 전위에 있을 때는 이 비율이 6.8%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김연경이 후위에 있으면 이 비율이 거의 두 배가 늘어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 △블로킹에 맞고 다시 흥국생명 코트로 넘어 온 공 가운데 44.6%를 김연경이 받아냈습니다. 이렇게 김연경이 공을 걷어 올리고 나면 브루나에게 공을 띄우는 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가 됩니다. 그러면서 브루나의 공격 시도 횟수도 시나브로 오르게 됩니다.

받고, 받고, 또 받은 김연경.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김연경은 전위에 있을 때 팀 전체 공격 시도 가운데 60.7%를 책임졌습니다. 브루나가 전위에서 남긴 공격 점유율은 48.8%였습니다. 두 선수가 모두 전위에 있을 때는 김연경이 53.3%였고 브루나는 38.3%였습니다. 그런데도 전체 기록을 놓고 보면 브루나에게 공격 시도 횟수가 뒤진 건 바로 이렇게 수비를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다영 체제에서 김연경이 공격 점유율이 뒤졌던 것과 김다솔 체제에서 공격 점유율이 줄어든 건 서로 이유가 다릅니다. 전위에서는 호흡이 잘 맞지 않는 세터를 가르쳐 가면서 선봉장 구실을 맡고, 후위에서는 본인이 걷어 올리지 않았으면 기록지에 ‘블로킹 차단’으로 남았을 공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지원 사령관 구실을 해내느라 공격까지 가담할 여력이 없었던 겁니다.

김연경은 이 여덟 경기에서 디그 성공도 100개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팀에서 제일 많은 숫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MVP 후보로 손꼽히는 선수 성적에 바로 못 미치는 수준으로 공격 효율을 유지하면서 수비에서도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상대방도 김연경 전·후위에 따라 다른 팀
김연경이 코트 앞뒤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에 따라 상대 팀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김연경이 전위에 있을 때 상대 팀 공격 효율은 0.271, 후위에 있을 때는 0.399였습니다. 김연경이 후위로 물러나면 상대 팀 공격수가 평균적으로 2010~2011 시즌 인삼공사 몬타뇨(0.400) 수준 공격력을 선보였던 겁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제일 큰 이유는 김연경이 후위로 가면 흥국생명 블로킹 벽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김연경이 전위에 있을 때는 상대 공격 시도 가운데 6.9%를 블로킹으로 잡아냈지만 후위에 있을 때는 이 비율이 3.2%로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후위로 물러나기 전 블로킹 한 개를 적립하는 김연경.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김연경은 이 씨 쌍둥이 자매 없이 치른 2020~2021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8경기에서 블로킹 11개를 잡아냈습니다. 이는 브루나와 함께 팀 내 공동 1위 기록입니다. 또 김연경이 전위에 있을 때는 상대 팀에서 전체 공격 시도 가운데 8%가 범실로 끝이 났지만 후위에 있을 때는 4.5%에 그쳤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MVP 후보로 손꼽히는 선수 성적에 바로 못 미치는 수준으로 공격 효율을 유지하면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어택 커버와 디그를 기록하고도 부족하다는 듯, 블로킹에서도 이런 기록을 남긴 겁니다.

● 군계일학(群鷄一鶴) 고군분투(孤軍奮鬪)
김연경이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데도 팀은 2승 6패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현실은 영화도 만화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배구는 리베로까지 최소 일곱 명 아니면 여덟 명이 함께 뛰는 단체 종목이니까요. 만약 외국인 선수가 브루나가 아니라 루시아(지난 시즌 공격 효율 0.265) 수준만 되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재영만이라도 계속 뛰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이재영은 리시브 효율 0.396을 남겨둔 채 학교 폭력 가해자가 되어 코트를 떠났습니다. 이는 리시브 점유율 15% 이상을 기록하고 있던 선수 가운데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습니다. 이재영은 지난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이다영이 팀에 합류하자 서를 받아 ‘택배처럼 보내주겠다’고 말했는데 이 약속을 나름 잘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재영 대신 코트에 들어서게 된 김미연은 시즌 마지막 여덟 경기에서 리시브 효율 0.205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최하위(18위)에 해당하는 성적입니다. 김미연이 공격 효율(0.174)에서만 이재영(0.274·9위)보다 떨어졌던 게 아닙니다.


왼쪽 날개 한 쪽이 떨어져 나가면 목적타 서브가 날아오게 마련. 김연경은 이 와중에도 0.338이었던 리시브 효율을 시즌 마지막 8경기에서는 0.373까지 끌어올렸지만 혼자 서브 폭탄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흥국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IBK기업은행을 물리칠 거라고 장담하기도 힘든 게 사실. 그렇다고 김연경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김연경은 팀을 망가뜨린 장본인이 아니라 어떻게든 수습에 나선 주인공에 가까울 겁니다. 그런데도 정규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어야 할 장본인들은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 있는데 말입니다.

※아, 이 칼럼은 자양강장제 뚜껑을 여러 번 따면서 썼습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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