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도망갈 곳 없앤 김남일, 꿈이 아닌 현실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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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27일 0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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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성남FC 신임 감독이 2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취임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News1
김남일 성남FC 신임 감독이 2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취임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News1
현역 시절 ‘진공청소기’ ‘터프가이’로 통했던 김남일의 기본적인 자세는 지도자로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새다. 다소 조심스러울 수 있는 신임 사령탑 취임식에서도 그는 당당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도망갈 구석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보험’을 들어놓는 것이 안전할 법한 출발선이지만 김남일 감독은 뒤 없는 직진을 택했다.

성남FC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된 김남일 신임 감독이 26일 오후 2시 구단이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17년 장쑤 쑤닝(중국) 코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코치, 2019년 전남 드래곤즈 코치 등으로 단계를 밟아온 지도자 김남일이 감독으로 신고식 하던 자리였다.

이날 김남일 감독은 40~50분가량 이어진 긴 문답시간을 같은 줄기의 소신으로 답을 이어갔다. 미리 많이 고민하고 준비해온 인상을 전한 김 감독은, “두려움 없이 맞서겠다” “결과로서 평가 받겠다”는 큰 축으로 자신의 각오를 피력했다.

시작부터 셌다. 그는 “2019년의 성남은, 수비적인 면에서는 좋았으나 공격 쪽으로는 다소 미흡했다고 본다. 과감하고 용감한, 공격적인 플레이를 시도할 것”이라고 팀을 평가했다. 이어 “성적과 관련한 목표를 제시한다는 게 시기상조일 수 있으나 목표는 상위 스플릿(파이널A 그룹)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단에서는 잔류만 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인 목표는 다르다”고 지향점을 전했다.

사실 파이널A 진입은 쉬운 목표가 아니다. 워낙 평준화된 K리그는 섣부른 전망이 어려울 정도의 치열한 판세가 매년 이어지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주가 최하위로 강등됐고 지난해 2위였던 경남은 11위로 추락하며 2부로 되돌아갔다.

관련해 김남일은 “인정한다.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원팀’이 된다면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선수 구성만 될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당찬 목소리를 전했다. 이어 언론을 향해서도, 리그에서 만날 상대들에게도 할 말을 했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당시 대표팀 코치로 재직할 때 나온 ‘빠따’ 발언이 이날도 어김없이 화제에 올랐다. 김남일은 허탈하게 웃은 뒤 “이제는 잊어주셨으면 한다. 철없이 나온 발언이었다”고 받아들인 뒤 “이제는 빠따가 아닌 버터로 하겠다.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달콤한 축구를 선사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유연하게 대처했다.

도전하는 자세는 의연했다. 김 감독은 “사실 맞대결이 기대되는 팀들이 많다. 내가 현역 시절 몸담았던 인천이나 수원이나 전북으로 원정가면 흥미로울 것 같다. 내가 감독으로서 어떤 역량을 발휘하는지 (전 소속팀 팬들에게)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배 지도자들과의 만남은 다 기다려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FC서울과의 만남이 기대된다”면서 “최용수 감독님과는 중국(장쑤 쑤닝)에서 같이 생활한 적도 있다. 꼭 이기고 싶은 팀이다. 내년에는 흥미로운 만남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당당한 출사표를 던졌다.

A매치 98회에 빛나고 월드컵 무대만 3번(2002, 2006, 2010)이나 밟았다. K리그(전남, 수원, 인천, 전북)를 포함해 네덜란드, 일본, 러시아리그 등 프로리그 경험도 풍부하다. 그리고 코치 경력도 꽤 쌓았다. 그래도 감독으로서는 초짜다. 그래서 안팎에서는 ‘단숨에 1부리그 감독’이 된 것에 대한 우려도 전한다. 당사자도 인정하나 당당했다.

김 감독은 “사실 감독으로서의 첫발이라 부담감이 없지는 않다. 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현실을 말하면서도 “지금 말하는 것보다는 결과로서 대신 답하겠다. 시즌이 모두 끝난 뒤 결과로 평가받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더 나아가 “두려웠다면, 자신이 없었다면 성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패기를 앞세워 마냥 청사진만 노래한 것 같으나 어쩌면 차가운 현실을 더더욱 차갑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표현대로 어차피 평가는 결과를 통해 받아야하는 것이고 결과가 나온다면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다. 김 감독은 “어차피 프로는 결과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짜감독 김남일은 꿈이 아닌 현실 쪽에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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