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서 다시 뭉친 김남일-설기현, 기대되는 ‘곰탕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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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26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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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감독이 성남FC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 News1
김남일 감독이 성남FC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 News1
김남일이 현역 시절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지난 2013년의 일이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인천의 한 곰탕집에서 만난 그는 “거의 매일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2007년 수원삼성을 끝으로 해외로 진출, 일본과 러시아에서 뛰었던 김남일은 2012년 고향 클럽 인천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로 유턴해 2013년까지 뛰었고 2014년 전북현대로 이적해 K리그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종업원도 딱 1명뿐이던 그 곰탕집은 진짜 ‘슬로 푸드’ 가게였다.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사람은 넘쳤으나 주문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누군가 착석하면 그때부터 주방의 사장이 한땀 한땀 고기를 썰어 곰탕을 말았다. 그 고기 덩어리가 다 없어지면 그날 장사는 끝이었다. 음식을 도저히 빨리 받아볼 수 없는 구조 속에서 한 숟가락 푹 떴던 곰탕은 정말 진했다.

당시 김남일은 “인천 입단을 결정지은 뒤부터 이곳을 다녔으니 1년 반은 된 것 같다”고 말한 뒤 “그래서 아주 가끔, 먹으려고 하다가 속에서 ‘욱’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는 말을 했다. 매일 먹어 질릴 때가 있다는 뜻이었다. 거의 ‘복용’ 수준이었다. 결국은 자기관리였다. 입에 좋은 음식들은 많으나 몸에 좋은 음식들은 적은 까닭이다.

설기현 전력강화부장이 김남일 감독을 돕는다. © News1
설기현 전력강화부장이 김남일 감독을 돕는다. © News1
2013년 당시에도 김남일은 서른여섯이었다. 선수 치고는 이미 적잖은 나이었는데 그냥 뛰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해 6월에 열렸던 레바논과의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커리어 98번째 A매치에 나섰던 진행형 ‘국가대표’였다. 이듬해에는 리그 최강 전북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겨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나이를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든 것은, 그만큼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했기 때문이었다.

그 곰탕집을 함께 다닌 동료가 설기현이었다. 그때 설기현은 서른넷이었다. 김남일은 “기현이랑 같이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훈련을 마친 뒤, 저녁을 먹고, 다시 차를 한잔 마시고, 함께 사우나를 간다”며 일상을 전했다. ‘터프가이’ 김남일과 ‘스나이퍼’ 설기현의 주된 동선은 ‘밥-차-사우나’였다. 그렇게 후배들의 귀감이 됐던 두 스타가 이제 지도자로 의기투합한다.

성남FC 구단은 지난 23일 김남일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2017년 장쑤 쑤닝 코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코치, 2019년 전남 드래곤즈 코치 등으로 경험을 축적한 지도자 김남일의 감독 데뷔다.

기대감이 많다. 일찌감치 ‘차세대 지도자’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장쑤 쑤닝 시절 김남일 코치를 옆에 두었었던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김 코치에게는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DNA가 있다”는 조용한 칭찬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어떤 지도자에게든 초행길은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다. 단숨에 무대고 1부리그다. 그렇기 때문에 김남일 감독 입장에서는 설기현 전력강화부장의 존재가 천군만마 같다.

성남 구단은 앞서 7월 “다양한 해외리그 경험을 갖고 있는 설기현을 전력강화실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무래도 코칭스태프와의 협업이 필수적인 보직인데, 그런 측면에서 김남일 신임 감독과의 시너지에 기대하는 시선이 적잖다. 현역 시절 곰탕집에서, 찻집에서 또 사우나에서 미래를 그렸던 두 사람이 지도자와 행정가로 손을 맞잡은 뒤 다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이끄는 것과 감독으로 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똑같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귀감이 되는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는 기대감을 키우는 조합이다. 과거 수원에서 선수 김남일과 함께 뛰어본 적 있는 오장은은 “그냥 옆에서 훈련하고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선배다. 김남일 선배와 함께 생활한 후배들은 그 자체로 축복”이라는 경험담을 전한 바 있다.

현역 막바지 김남일은 “내가 할 일은, 그저 더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입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후배들의 마음을 더 움직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필드에서든 훈련장에서든 후배들이 보고 들으라고 입 대신 몸으로 말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런 게 김남일 스타일이고 그 스타일에 쿵짝을 맞춰준 후배가 설기현이다.

이제 감독이 됐으니 필드에서 함께 뛸 수야 없겠으나 본질은 다르지 않는 법이다. 예전처럼 ‘입보다 몸이 먼저’ 말한다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다시 뭉친 김남일-설기현의 곰탕 리더십은 그래서 일단 기대감이 커진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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