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우리카드 장지원이 부모님께 드린 최고의 성탄절 선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2월 26일 1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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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카드 장지원(가운데). 스포츠동아DB
우리카드 장지원(가운데). 스포츠동아DB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부모님 통장으로 1억3000여만 원을 넣어준 아들이 있다. 좋은 직장 구하기 힘들어 대학을 몇 년씩 다니고 졸업 뒤에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자식들이 많은 요즘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말 효자다.

우리카드의 고교생 리베로 장지원이 주인공이다. 25일 한국전력과의 수원 원정에서 국가대표로 차출된 이상욱을 대신해 처음 선발로 출전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2019년의 성탄절의 첫 경험이다. 신영철 감독은 신인드래프트에서 사상 처음으로 고졸선수 리베로를 제1순위로 뽑은 뒤 차근차근 출전을 준비해왔다. “이상욱이 빠진 동안에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면서 그동안 다양한 상황에서 투입하며 배짱과 센스를 키워왔다.

22일부터 이상욱이 대표팀에 불려나간 뒤 신영철 감독은 장지원을 따로 불러 선발출전을 예고했다. 긴장했던 그는 경기 전날인 24일 선배와 함께 훈련장 부근의 약국에 들러서 우황청심환을 샀다고 했다. 큰 경기를 앞두고 배짱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모자란 선수는 가끔씩 이렇게 약의 힘도 빌린다. 삼성화재 시절 이강주도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청심환을 먹고 뛴 적이 있다.

아들의 첫 선발출장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님은 고향 순창에서 한걸음에 수원까지 올라왔다.

경기장에서 부모는 가장 기쁜 성탄절 선물을 받았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순간의 부모님 마음은 세상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을 것이다. 아들은 경기 1시간 전에 청심환을 먹으며 긴장된 마음을 달랬고 열심히 공을 받았다. 33개의 리시브를 하며 58%의 높은 리시브효율을 기록했다. 14번 상대 공격을 받으려고 시도해 11개의 디그를 기록했다. 디그 성공률은 79%였다. 이 가운데 6개의 빼어난 디그도 있었다. 이상욱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은 덕분에 우리카드는 3-1 승리를 거뒀다.

배구명문 익산 남성고의 주전리베로로 활약하던 그는 당초 한양대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7월 19세 이하 세계유스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대표팀의 일원으로 우리카드와 연습경기를 벌인 것이 운명을 바꿨다. 그 경기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신영철 감독은 프로행 의사를 타진했다. 장지원도 이왕 배구선수로 성공하려면 빨리 프로팀 지명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바람에 그를 데려가려고 했던 한양대 양진웅 감독이 난처해졌지만 어린 선수는 결심을 바꾸지 못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장지원과 우리카드는 사전조율을 모두 마치고 신인드래프트만 기다렸다. 하지만 9월16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남자부 신인드래프트를 몇 시간 앞두고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5순위의 우리카드보다 바로 앞선 4순번의 삼성화재가 장지원을 지명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남성고 출신의 신진식 감독은 당초 남성고 세터 이현승을 탐냈지만 그는 대학행을 선택했다. 미확인 소문을 들은 우리카드는 급했다. 즉시 남성고에 연락해서 소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교장선생님께서 “한 번 맺은 약속은 그대로 지킨다”고 약속을 해주고 나서야 우리카드는 마음을 놓았다.

그날 삼성화재는 홍익대 3년생 정성규를 1순위로 뽑았고 지금까지의 활약을 본다면 그 판단도 나쁘지 않았다.

신인지명 기자회견장에서 장지원은 “프로에 가서 선배들과 외국인선수의 더 센 공을 받아보고 싶었다. 이전부터 프로에서 오라고 하면 무조건 갈 생각이었다. 신영철 감독님께서 잘 봐주셨다. 프로에 가서 잘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열심히 해서 경기에 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2001년생으로 우리카드의 가장 어린 선수인 그는 성탄절에 자신이 말했던 다짐 가운데 하나를 달성했다. 현재 리베로 가운데 최고령은 41세의 여오현(현대캐피탈)이다. 장지원도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최소 20년 이상 선수생활이 가능하다. 한 직장에서 20년을 버티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세상에서 장지원의 부모님은 정말 아들이 대견할 것 같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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