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무실, 책상 하나 없는 국가대표 전임감독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5시 30분


정운찬 KBO 총재. 스포츠동아DB
정운찬 KBO 총재. 스포츠동아DB
정운찬 KBO 총재는 서울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로 재직하며 열정적인 야구 마니아로 스스로를 알렸다. 정 총재가 잠시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배경에는 경제학자라는 본업에 대한 기대감에 야구팬이라는 친숙함도 어느 정도 밑바탕이 됐다.

손혜원(더불어 민주당·서울 마포구을) 국회의원은 정 총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열혈 야구 팬임을 자부하고 있다. 손 의원은 야구계의 개혁을 자신의 손으로 이루겠다며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과 정 총재를 연이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러 세웠다.

잘못된 시스템은 개선되어야 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 때 전임 감독에게 너무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드러난 문제점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안팎에서 고심이 크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을 때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선수 선발 과정에 있어 좀 더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기술위원회에 더 힘을 실어 주는 빠른 해법도 존재한다.

그러나 손 의원은 연달아 어긋난 프레임을 들고 국감을 진행했다. 앞서 선 감독에게 연봉과 근무시간 등을 캐묻다 야구팬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주를 이룬 비난은 ‘손 의원이 야구의 특성을 모른다’로 모아졌다. 손 의원은 정 총재를 증인으로 세우고 가장 중요한 현안과 동떨어진 질문을 이어갔다. ‘대표팀 전임 감독제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토리 라루사 처럼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지만 성공한 감독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집에서 TV로 KBO리그 5경기 중계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선 감독의 발언이 적절한지도 물었다.

정 총재는 이에 답하며 아무런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임기 시작 전 결정된 전임감독제에 반대 의사를 내비쳤고, 난데없이 경제학자의 자세까지 들먹이며 선 감독을 비판했다. 정 총재는 ‘내 잘못’은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정 총재와 손 의원이 진정한 야구팬이라면 전임감독제가 왜 도입됐는지부터 되돌아봤어야 했다. 프로선수가 참여하는 야구 국제대회의 지도자는 과거 독이 든 성배로 불렸다. 현역 감독들은 대표팀 사령탑을 사양하기 바빴다. 팀 성적, 자신의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니 비난하기 어려웠다. 한국야구의 눈부신 성과인 2008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역시 아무도 사령탑을 맡지 않으려했던 상황에서 김경문,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신화를 이뤘다.

선 감독을 두둔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과연 손 의원이 무엇을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고 하는지 점점 더 물음표가 많아지고, 정 총재는 책임자인 커미셔너의 본분을 잊고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는 점이다.

‘집에서 5경기 전체를 한눈에 보는 업무 방식이 잘못 됐다’고, 야구를 정말 좋아하고 잘 아는 의원님과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야구 마니아인 총재님은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이렇게 야구현안에 해박하고 열심히 취재한 손 의원에게 묻고 싶고, 정 총재에게 확인하고 싶다. 서울 KBO 야구회관에는 국가대표 감독 사무실이 없다. 책상 하나 없다. 항상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점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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