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타자는 팀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뽐낸다. 누상에 있는 주자를 홈에 불러들여야 하는 이들의 역할을 고려하면, 결정적인 순간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투수들의 부담은 천근만근이다. 그러나 그 부담과 싸워 이기는 것 또한 투수들의 몫이다. 투수의 4번타자 상대 성적이 갖는 의미가 큰 이유다. 특히 최근 4번타자의 트렌드는 장타력을 앞세워 대량득점을 이끌어내는 것이기에, 투수 입장에선 4번타자 상대 피OPS(장타율+출루율)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만큼 효과적인 승부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28명의 투수 가운데 4번타자 상대 피OPS가 가장 좋은 투수는 브룩스 레일리(30·롯데)다. 피출루율 0.310, 피장타율 0.314를 더한 피OPS는 0.624에 불과하다. 올 시즌 상대 4번타자와 총 42차례 승부해 홈런을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은 부분이 돋보인다. 피장타율에서 피안타율을 뺀 순장타허용율은 고작 0.085에 불과하다. 4번타자에게 허용한 장타가 2루타 3개뿐이라는 점은 그만큼 안정적인 투구를 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레일리는 올 시즌 8차례 퀄리티스타트(QS·선발투수 6이닝 3자책점 이하),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하고도 승수는 4승(6패)이 전부다.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고려하면, 많은 승수를 쌓지 못했지만 그가 지닌 가치는 승수에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올 시즌 이닝당 0.29개의 볼넷 허용은 그의 안정감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롯데 구단관계자는 “레일리가 서글서글한 인상이지만, 승부욕이 엄청난 선수”라고 귀띔했다. 상대 타선에서 가장 강한 타자를 효과적으로 잡아내는 비결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