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든 순간 내 이름 또렷이 들려… 응원 힘입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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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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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김민석 男빙속 1500m 깜짝 동메달

김민석이 13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1500m 경기에서 힘찬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날 동메달을 차지한 
김민석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500m 종목에서 메달을 딴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민석이 13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1500m 경기에서 힘찬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날 동메달을 차지한 김민석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500m 종목에서 메달을 딴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트랙 밖에서 초조하게 마지막 조 선수들의 레이스를 지켜보던 김민석(19·성남시청)은 전광판 기록을 확인하자 자신을 지도해준 보프 더용 코치(42·네덜란드)를 끌어안고 펄쩍펄쩍 뛴 뒤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녔다. 그만큼 극적이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신성’ 김민석이 13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서 ‘사고’를 단단히 쳤다. 1분44초93으로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그동안 유럽과 미주 선수들의 전유물이던 남자 1500m에서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 1500m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장거리 선수 못지않은 체력까지 요구해 신체조건이 좋은 유럽 선수들의 독무대로 여겨졌다.

레이스 분위기도 좋았다. 김민석이 15조로 역주를 펼치는 사이 관중석에서 열렬한 환호소리가 파도타기를 하듯 이어졌다. 홈 관중의 전폭적인 응원 속에 김민석은 결승선에서 마지막 발을 쭉 내밀었다. 중간 결과는 3위. 관중들은 경기장이 떠나라 ‘김민석’ 이름 석자를 크게 외쳤다. 이후 6명이 레이스를 펼쳤지만 김민석의 기록을 넘어서진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김민석은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예상 못한 결과를 냈다”며 활짝 웃었다. 700m 구간을 돌때 체력이 한계에 이르렀지만 김민석 이름을 연호한 관중들의 함성이 큰 힘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 김민석은 “힘든 과정에서 내 이름이 또렷하게 들리더라”며 경기 상황을 설명했다. 김민석은 지난해 12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3차 대회에 출전해 세운 개인 최고기록(1분43초49)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이날 1분44초대에 결승선을 통과한 3명 중 1명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작년 삿포로 아시아경기 ‘우상’ 이승훈과 함께 김민석(왼쪽)이 지난해 삿포로 겨울아시아경기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경기를 마친 뒤 함께 출전한 이승훈에게 격려를 받고 있다. 당시 이승훈은 금메달, 김민석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동아일보DB
작년 삿포로 아시아경기 ‘우상’ 이승훈과 함께 김민석(왼쪽)이 지난해 삿포로 겨울아시아경기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경기를 마친 뒤 함께 출전한 이승훈에게 격려를 받고 있다. 당시 이승훈은 금메달, 김민석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동아일보DB
일곱 살 때 쇼트트랙으로 스케이트를 시작한 김민석은 어린 시절부터 쇼트트랙은 물론 스피드스케이팅 주니어 대회를 휩쓸며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승훈의 계보를 이을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피드스케이팅에 집중한 김민석은 2014년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6년 창춘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500m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겨울 유스올림픽에서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 주니어계의 최강자로 이름을 올랐다.

성인무대 데뷔전에서도 당돌했다. 지난해 2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정상급 선수들과 처음 경쟁한 김민석은 1500m에서 아시아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5위에 올랐다. 같은 달 열린 삿포로 아시아경기 1500m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시즌 월드컵 1차 대회 B 파이널에서 1분44초97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날 A 파이널에서 우승한 ‘세계 최강’ 데니스 유스코프(29)의 기록(1분44초42)에 견줘 크게 밀리지 않았다.

김민석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담금질을 했다. 성장세가 뚜렷했지만 아무도 자신을 메달 후보로 지목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도 그를 자극했다. 김민석은 자신의 주 종목인 1500m에 맞춰 힘을 기르기 위해 몸무게를 3kg 가까이 증량하며 묵묵히 땀을 흘렸다. 그의 진면목을 확인한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빙상팀 감독은 올림픽 직전 김민석의 ‘깜짝 메달’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이날 중계방송 해설을 맡은 제갈성렬은 “김민석이 끝까지 자신의 템포를 유지한 게 메달을 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김민석과 함께 레이스를 펼친 주형준(27·동두천시청)은 1분46초65의 기록으로 17위를 기록했다. 이승훈이 1500m 출전을 포기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얻게 된 주형준은 이날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세운 개인 올림픽기록(1분48초59)을 약 2초가량 앞당겼다.

금메달은 1분44초01의 기록을 세운 네덜란드의 키엘트 나위스(29)에게 돌아갔다. 이번 시즌 1500m 세계랭킹 2위인 나위스는 데니스 유스코프가 러시아 약물 스캔들로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진 공백을 노려 올림픽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은 네덜란드의 파트리크 루스트(23)가 차지했다.

김민석은 21일 이승훈(30·대한항공), 정재원(17·동북고)과 팀추월, 24일 매스스타트에 출전해 또 다시 메달을 노린다.

강릉=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평창올림픽#김민석#동메달#스피드스케이팅#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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