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규 “너무 떨리면 우승 상상해”… 현정화 “국민응원 기운 빨아들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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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이 ‘2018 평창’에게… ]
<상> 빙속 샛별 김태윤-김민선 만난 서울올림픽 탁구금메달 영웅들

“여러분도 평창에서 메달을 따면 이곳에 얼굴과 이름을 올릴 수 있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왼쪽)이 지난달 27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2층에 있는 한국체육박물관에서 김태윤과 김민선(오른쪽부터)에게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중 자신의 사진을 가리켜 보이고 있다. ‘탁구 여왕’ 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여러분도 평창에서 메달을 따면 이곳에 얼굴과 이름을 올릴 수 있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왼쪽)이 지난달 27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2층에 있는 한국체육박물관에서 김태윤과 김민선(오른쪽부터)에게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중 자신의 사진을 가리켜 보이고 있다. ‘탁구 여왕’ 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화가 타올랐을 때 김태윤(23·서울시청)과 김민선(18·서문여고)은 태어나지 않았다. 그해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49)과 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48)은 각각 20세와 19세의 나이로 탁구 남자 단식과 여자 복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한국 탁구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건 처음이었다. 1988년의 그들처럼 올림픽 영웅을 꿈꾸는 ‘서울 대표’ 김태윤과 ‘고교생 대표’ 김민선이 27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국가대표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까. 환하게 웃으며 태극마크 후배들을 맞은 선배들은 준비해 온 조언을 쏟아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어. 태극기만 보면 가슴이 뛰었거든. (일동 웃음) 중학교 3학년 때 성인 대표팀에 선발된 뒤 이듬해 처음 나간 국제대회에서 북한 선수를 만났는데 진 거야. 충격이었지.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운동했어.”(유 감독)

“고교 1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고 2학년 때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에서 바로 금메달을 땄어. 유 감독님이나 나는 서울 아시아경기,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꿈나무로 육성된 세대였어. 선배님들에 비하면 혜택을 많이 받았지.”(현 감독)

전설 같은 선배들이지만 후배들도 나이에 비해 경력이 만만치 않다. 중고교 시절부터 전국체육대회 500m, 1000m 종목을 휩쓸었던 김태윤은 19세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해 부상 등으로 부진을 겪었지만 최근 상승세가 가파르다. 김민선도 중학교 때부터 동급 최강이었다. 16세에 처음 국가대표가 된 김민선은 9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 폴 클래식 500m에서 37초70으로 세계주니어신기록을 세웠다. 도핑 테스트를 거른 주최 측 실수로 공인받지 못했지만 2007년 이상화(28)가 세운 현재 세계주니어기록 37초81을 0.11초나 단축한 기록이었다.

최근 국가대표 선발전을 산뜻하게 통과한 김태윤이 두 감독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은 ‘부담감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계를 넘는 노력이 있어야 부담감을 줄이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 탁구의 경우 상대 선수의 구질을 모르면 대결 자체가 두려워. 하지만 많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대비한 구질이라면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이 편하지.”(현 감독)

“출발선에 섰을 때 가슴이 벌렁거리지? 긴장하면 근육이 수축돼 100% 스타트가 늦어. 그럴 때는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차분하게 상상을 해 봐. 우승을 해서 시상대에 서고, 수많은 관중이 나를 위해 환호하는 것 등…. 물론 많은 연습량은 기본이고.”(유 감독)

언론에서 ‘제2의 이상화’라고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부담스러웠다는 김민선의 말에 유 감독은 조언을 이어갔다. “나와 현 감독 모두 한동안 1인자였어. 그래도 1등은 결국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어. 친한 사이겠지만 ‘언니 이상화’로 생각하지 말고 민선이가 넘어야 할 상대라고만 생각해.”

어떤 대회든 개최국의 이점은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경기장을 찾은 국민들의 응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격려하고 환호를 보내면 확실히 느낌이 달라. 그 기운을 다 ‘먹어야’ 돼. 그러면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힘을 낼 수 있더라고. 그 기운을 잘 기억하면 롱런도 할 수 있어.”(현 감독)

“서울 아시아경기 8강에서 세계랭킹 1위를 만났는데 최종 5세트에서 스코어가 10-18까지 벌어진 거야. 외국이라면 포기했을 거야. 사람이니까. 그런데 가족들은 물론이고 수천 명의 관중이 나만 응원하니까 도저히 포기를 못 하겠더라고. 결국 역전했어.”(유 감독)

일일 멘토로 나선 서울의 영웅들은 땀과 노력만이 자신감의 배경이 된다고 역설했다. 현 감독은 “훈련의 가장 기본은 러닝인데 누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매일 나만의 목표를 세워라. 매일 0.1초라도 줄이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다”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강조했다.

자리를 마무리하며 유 감독은 김태윤에게, 현 감독은 김민선에게 즉석에서 사인을 한 라켓을 선물했다. 명함도 건넸다. 평창 꿈나무들이 활짝 웃었다. 김태윤은 “올해 서울시청에 입단한 뒤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슬럼프를 탈출할 수 있었다. 오늘 선배님들의 금메달 기운을 받으니 더 자신감이 생긴다. 멋진 경기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두 친구가 실력도 좋은 데다 잘생기고 예쁘네. 개막까지 이기고 싶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 해. 진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지는 거야.”(현 감독)

“경기를 앞두고 불안하면 전화해. 내가 목소리로라도 기를 넣어 줄게. 가족이든 선배든 의지할 사람이 있으면 힘이 나는 법이야. 원한다면 내가 평창까지 달려갈게.”(유 감독)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평창올림픽#김태윤#김민선#1988년 서울 올림픽#유남규 삼성생명 감독#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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