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기획] 대세 수비수 김민재, 가족과 추억나들이

스포츠동아 입력 2017-10-02 05:45수정 2017-10-0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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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를 앞두고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김민재 가족은 가을햇살만큼이나 밝은 표정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명지대 골키퍼로 재학 중인 형 김경민과 엄마 이유선 씨, 김민재, 아빠 김태균 씨. 추억의 교복을 갖춰 입은 가족들 사이에서 김민재만 유일하게 교련복을 입고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다. 전주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민재는 애비가 봐도 간 큰 놈, 실수해도 훌훌 털어요”

통영서 횟집 운영하는 부모님
한살터울 형은 명지대 골키퍼
가족사진 하나 없는 우리가족
뭐가 그렇게 살기 바빴는지…
같이 모이면 이렇게 행복한데

■ 민재

“나는 수비수, 형은 골키퍼 ‘축구 가족’
형이랑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같은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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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백일도 안된 민재가 철봉에 매달렸죠
어릴적부터 지면 못 참는 기질이었죠”

■ 엄마

“첫째는 손재주 좋았는데 골키퍼가 됐고
공격수 했던 둘째는 ‘공격의 수’ 잘 읽어”

■ 형

“국가대표 동생, 너무나 자랑스럽죠
동생과 한 그라운드 뛰는 모습 꿈꿔”


2017년의 한국축구는 우울했다.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여정이 너무도 힘들었고 팬들의 기대치는 너무 높았다. ‘질 때 지더라도’ 당당한 모습의 선수와 경기를 팬들은 원했다. 다행히 목적은 달성했다. 이란∼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막판 2연전을 0-0으로 비기며 통산 10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티켓을 땄다. 이 과정에서 대형 스타가 탄생했다.

중앙수비수 김민재(21·전북현대)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 명성을 떨쳐온 터라 낯선 선수는 아니었지만 A매치는 또 다르다. 태극마크의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대 반, 우려 반 속에서 데뷔전을 무사히 소화했고, 2번째 A매치도 120% 역할을 했다.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가족이었다. 경남 통영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축구를 하는 한살 터울의 형(김경민·명지대 골키퍼)은 내내 가슴을 졸이면서도 행복했다. 풍성한 수확과 결실의 시기인 한가위를 맞이해 스포츠동아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김민재의 가족과 알찬 시간을 보냈다.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하던 한옥마을의 풍취를 만끽하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추억의 교복을 차려입은 아빠(김태균·47)와 엄마(이유선·48), 형 그리고 교련복을 입은 김민재는 “흔한 가족사진 한 번 찍지 못했다. (형제가 축구를 시작한 뒤) 형이 있으면 동생이 없고, 동생이 있으면 형이 빠졌다.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즐겁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전주 한옥마을로 나들이를 한 전북현대 김민재(맨 왼쪽) 가족. 스케줄이 빡빡한 축구선수 형제 때문에 흔한 가족사진 한 장 남기기 어려웠다고 푸념하던 아빠 김태균(왼쪽 2번째) 씨는 사진촬영 내내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하얀 피부, 훤칠하고 늘씬한 체형의 형(경민·맨 오른쪽)과 대조적인 체구의 동생을 바라보는 엄마 이유선 씨. 전주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축구선수 두 아들

-민재는 어떤 아들이었나요?


아빠=실수를 해도, 경기를 망쳐도 금세 잊고 털어요. 연습할 때 요령을 피운 적이 없어요. 담대하고 간도 덩치(189cm·88kg)만큼 크죠. 내 자식이라 그런지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어도 아들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엄마=대견하죠.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렸어요. 큰 아이도 작은 애도. 합숙생활이 많았는데, 한 번도 투정이 나온 적이 없어요. 넋두리를 할 법도 한데 들어보지 못했어요. 힘들다고 응석부리면 우리가 더 힘들어할까 걱정한 게 아닐까요. 잘 극복해줘서 대견하고 감사하죠. 두 아들 모두 다.

-선수 입장에서 본 동생은 어때요?

형=어릴 적부터 지는 걸 싫어했어요. 자신이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그렇게 빨리 채워 넣을 수 없어요. 덩치는 저렇지만 머리도 좋아요. 곰 같은 여우? 정확히 얘기하면 잔머리요. 때론 체력으로, 때론 체격으로 필요한 움직임만 보여줘요. 동생인데, 선배 같을 때도 있어요. 형이 힘들 때 붙잡아주기도 하고. 희생할 줄도 알고, 항상 사력을 다하더라고요. 팀 스포츠에 정확히 어울리는 타입이죠.

-형 이야기 동조해요?

민재=음, 동조해요. 엄마가 넋두리를 안 했다고 하는데 힘든 것이 없어서가 아닌 거 아시잖아요. 다만 못하면 칭찬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봐요. 벌을 받아야 하고 질책도 들어야 하죠. 당연히 숙소에서 있었던 일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죠. 형이랑 제가 택한 길인데 감내해야 한다고 봐요.

축구대표팀 김민재. 스포츠동아DB

-포지션이 수비수와 골키퍼잖아요.

아빠=작은 녀석이 먼저 축구를 시작했어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위치가 미드필더였어요. 아들 성향을 봤을 때 수비형 미드필더를 하면 어떨까 싶었죠. 그런데 포워드를 하더라고요. 중학교에 진학한 뒤 수비수로 자리를 굳혔죠. 큰 아들은 다재다능했어요. 그림도 잘 그렸고. 그런데 계속 축구를 고집했어요. 미술학원 선생님이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시키라”고 권유하더라고요. 늦게 시작한 만큼 손을 쓰는 포지션을 찾아 골키퍼를 시작했어요.

엄마=아들이 공격적인 타입이라 스트라이커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런데 수비수로서 재능을 보여줬어요. 기본기도 좋아지고 키도 쑥쑥 자라고. 돌이켜보면 다행이기도 해요. 짧게나마 공격수를 경험했으니 상대를 읽는 데 도움이 되잖아요. 큰 아들도 잘해주고 있어요. 전문대에서 편입에 나설 정도로 착실히 진로를 찾아가고 있어요. 스트레스가 클 텐데 잘 이겨주네요.

아빠=애환도 많았어요. 아들 녀석들이 전부 수비를 책임지잖아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함께 다녔는데 아이들 경기를 어쩌다 보러가면 실점 장면만 계속 입방아에 오르내리더라고요. 결국 고등학교는 진학을 따로 시켰어요.

민재=형과 많이 다퉜죠. 한 번쯤 떨어져서 생활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헤어져보니 정말 허전하더라고요. 계속 뛰었으면 좋았을 걸.

형=솔직히 귀찮기도 했어요. 동생을 계속 챙겨야 하니. 그런데 떨어져 있어보니 알겠더라고요. 동생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저만한 선수가 보이지도 않았고요.

전주한옥마을. 전북현대 김민재 가족. 전주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태극전사 & 전북맨

-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칭찬이 대단했어요.


민재=우리나라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형들과 함께 뛴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어요. 부담도 엄청났죠. 가뜩이나 분위기도 안 좋은데 조금이라도 못하면 더욱 비난이 커지잖아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심정이었어요.

엄마=꿈같은 일만 계속 이뤄졌어요. 세상에, 국가대표라니. 서울월드컵경기장의 6만 관중의 함성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했어요. 아들이 저 응원을 받고 뛰고 있구나.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날 (머리) 부상까지 당했잖아요. 조마조마 철렁철렁 대단했죠.

민재=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했죠. ‘실점만 피하자!’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단단했지만 코칭스태프도 새벽녘까지 미팅을 하시더라고요. 그랬던 모든 부분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형=전혀 긴장하지 않았어요. 동생이 선발로 뛰면 뭔가 보여줄 것 같았어요. 주변에서 훨씬 좋아하더라고요. 동생이 국가대표로 뛴다고. 너무 자랑스러워요.

동생=월드컵에 못나갈 수 있는 상황이 힘들게 다가왔지만 즐기려 했어요. 그만큼 희열도 대단했고.

전북 김민재.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전북 입단도 대단하지만 꾸준히 뛰고 있어요.

아빠=아들의 프로 데뷔전이 더 떨렸어요.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음 경기에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경기 전날 민재가 “선발로 뛸 것 같다”는 얘기를 해서 “혹여 선발이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괜찮다”고 해줬는데 말만 그랬죠. 조마조마했어요.

엄마=대표팀은 솔직히 출전 자체를 생각하지 않아 덜 떨렸는데, 프로 팀에서의 첫 출전은 잊을 수 없어요.

민재=최대한 편하게 하려고 했는데, 정말 떨렸어요. 설렘도 컸고요.

아빠=민재가 특별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어요. 백일도 안 된 아기가 철봉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고 버티더라고요. 체력은 타고 났어요. 2∼3살 많은 형들과 싸움도 많이 하고 지지 않고. 그런 재능을 운동으로 돌린 겁니다. 지면 참질 못하는 기질을 축구에 쏟아냈어요. 경기에 뛸 때 보면 상대에 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듯해요.

엄마=싸움꾼 기질이 좋게 바뀐 거죠.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깨우치면서부터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어요. 자신이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전북 입단이 그래도 마냥 좋지는 않았죠?

형=본인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는 한 적 있어요. “많이 뛰지는 못할 것 같다”고. 저도 동조했죠. 신인이 전북에서 당장 뛰는 것은 어려울 테니. 그런데 기회가 빨리 싱겼어요. 이제 동생 걱정은 안 해요.

민재=왜 불안하지 않았겠어요. (최강희) 감독님이 공개적으로 칭찬을 하셨는데 그런 믿음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어요. 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경기를 손해 봤는데요. 이길 경기 비기고, 비길 경기 지고. 상대에 페널티킥(PK) 찬스도 여러 번 허용하고. 그런데도 기회를 계속 주셨어요. 이런 신뢰가 대표팀까지 연결됐어요.

아빠=아들 데뷔전은 정말 힘들었는데, 프로 입단 자체는 긍정적으로 봤어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적응해주길 바랐죠.

엄마=언젠가 농담처럼 아들이 “K리그에 가면 전북 유니폼을 입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기왕이면 최고의 팀에서 이겨내길 바랐어요. 이 말이 현실이 됐죠.

아빠=좋은 선배들과 또래들, 여기에 코칭스태프의 지도가 아들의 성장을 도왔어요. 개인훈련까지도 많이 챙겨주시더라고요.

민재=단점이 빌드-업이거든요. 정확한 볼 배급은 기본이잖아요. 동료들이 편하게 볼을 잡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 전북은 다 잘해야 해요. 공중볼 다툼도 두려웠는데 이제 자신 있어요. 계속 헤딩 연습을 했더니 조금씩 실력이 늘더라고요.

전주한옥마을. 전북현대 김민재 가족. 전주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인생

-형제는 효자라고 자부해요?

민재=불효자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효자? 제 경기를 보러 오시는 걸 즐기는 부모님 모습이 행복을 줘요. 용돈도 드리고, 생활비도 보조하는 제가 대견하기도 해요. 이제는 우리 형이 행복했으면 해요. 누구보다 성실하다고 자부해요. 자기관리도 철저해요. 노력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해도 우리 형은 최고죠.

-형제가 어떤 인생을 살기 원하세요.

아빠=장남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큰 것 같고, 작은 녀석은 너무 털털하니까 성격이 반반씩 나뉘면 어땠을까 싶긴 해요. 축구에서도 성격이 그대로 나와요. 그래도 두 아들이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고 평범하게 결혼도 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엄마=작은 아이는 프로 1년차고, 큰 아이는 진로 걱정이 있고. 모두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고 높은 하늘을 바라봤으면 해요. 실패와 성공은 나중의 일이고, 일단 도전하는 삶을 살길 희망해요.

아빠=또 하나, 부상은 없었으면 합니다. 상처도 많이 받지 않는 따스한 삶을 살았으면.

-형제는 어떤 선수가 될까요.

민재=평범한 선수는 되고 싶지 않아요. K리그에서 가장 잘하는 수비수가 되고 싶어요. 평범한 수비수가 아니라 튀는 수비수. 뭐, 오해는 마세요. 어디까지나 그라운드에서 튀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형=동생을 보고 ‘제2의 홍명보’라고 하던데 이제는‘전북의 전설’로 기억되길 바라요. 저희 형제가 하고 싶은 모든 걸 부모님이 허락해주시고 지원해주셨어요. 믿어주고 기다려주셨고. 저희가 보답할 차례죠. 형제가 한 경기장에서 뛰는 장면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민재=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저도 멈춤 없이 나갈 테고, 형도 훨씬 높은 곳으로 향할 테니까요. 국내에 형제 선수들이 꽤 있지만 (같은 그라운드를 누비는 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래도 저희는 해낼 겁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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