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피플] 은퇴 노병준 “무릎에게 졌지만…노병은 죽지 않는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1일 05시 45분


지난해까지 대구FC 유니폼을 입었던 노병준이 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 전 펼쳐진 자신의 은퇴식 도중 후배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해까지 대구FC 유니폼을 입었던 노병준이 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 전 펼쳐진 자신의 은퇴식 도중 후배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15시즌 331경기 59골·26도움 활약
2015시즌 무릎부상 타격…결국 은퇴
“경기장 누볐던 매순간 온힘으로 뛰어
유럽·남미서 현대축구 공부는 계속”


“충분히 행복했었다고, 또 행복할 거라고 확신해요.”

또 한 명의 축구스타가 초록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쉼 없이 뛴 15년. 아쉬움은 조금 남을지언정, 후회는 없다고 했다. ‘노병’ 노병준(38)의 마지막 걸음은 초라하지 않았다.

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대구FC-전남 드래곤즈의 K리그 클래식(1부리그) 5라운드 경기는 또 다른 측면에서 주목 받았다. 노병준의 은퇴행사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팬 사인회와 골 모음 영상, 옛 동료들의 영상 메시지 등 지난해까지 그가 몸담은 대구 구단은 떠나는 베테랑을 위해 나름의 배려를 했다.

K리그 무대를 밟은 수많은 선수들이 아무런 존재감 없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 다반사지만, 많은 이들은 노병준을 이렇게 떠올린다. ‘항상 헌신적인’, ‘언제나 최선을 다한’ 당당한 선수였다. 그 자신도 말했다. “나 또한 그렇게 기억되고 싶었다.”

노병준.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노병준.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행복하고, 행복할 선수

노병준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여러 단어를 나열해봤다. 미안할 정도로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스스로 어떤 선수였다고 생각하느냐’는 우문으로 시작된 대화. 한참 웃던 그는 “경기장을 누볐던 순간순간만큼은 출전횟수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정말 온 힘을 전부 쏟았다”고 답했다.

정확하다. 2002년 전남에서 프로로 데뷔한 노병준은 대구에서의 지난 시즌까지 15시즌 동안 사력을 다했다. 화려한 기술을 지닌 것도, 아름다운 플레이를 펼치는 것도 아니었지만 족적은 충분히 깊었다. K리그 통산 331경기를 뛰며 59골·26도움을 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AK에 몸담은 2006년부터 2년간을 제외한 13년 동안 K리그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사실 좀더 현역으로 뛰고픈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딱히 큰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한 노병준이지만, 2015시즌 말미에 당한 무릎 부상을 끝내 털어낼 수 없었다. 14경기를 소화한 지난 시즌 직후 구단과의 면담을 통해 은퇴 결심을 굳혔다.

“대구에선 더 이상 자리가 없었지만, 굳이 욕심을 부렸다면 아마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챌린지(2부리그) 몇몇 팀들이 접촉해왔다. 그런데 더 이상은 무리였다. 깔끔한 마무리가 필요한 타이밍이라고 봤다. 대구에도 감사하다. 많은 팬들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게 은퇴행사까지 열어줬다. 쉬운 약속이 아닐 텐데, 충분히 예우를 받았다.”

아픈 무릎도 원망스럽지 않다. 지금까지 잘 버텨준 몸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비록 무릎에게 졌지만 울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 (포항 스틸러스에서) 아킬레스건을 다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이겼는데, 무릎은 쉽게 낫지 않더라. 확실히 나이를 먹은 거다. 그래도 내 몸에게 감사할 뿐이다. ‘좋은 선수’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나.”

노병준.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노병준.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제2의 삶, 나도 궁금하다!

처음 전남 유니폼을 입었을 때를 회상했다. 노상래(전남 감독), 김태영(수원삼성 코치)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선배들이 은퇴를 앞둔 무렵이었다. 그 때부터 노병준은 언젠가 꼭 찾아올 마지막 순간을 가슴에 새겼다. “잠시 강렬한 선수는 되고 싶지 않았다. 조용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좋은 선수가 되려고 했다. 축구화를 신은 매 순간이 전쟁이었다.”

목표를 이뤘으니 성공한 인생이다. 남들은 한 번 경험하기 힘든 우승도 여러 차례 맛봤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전부 포항에서 얻었다. 2008년 FA컵 정상으로 시작해 이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평정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도 4골을 뽑은 그의 몫. 2012년 다시 FA컵을 품에 안은 뒤 2013년 사상 첫 ‘더블(2관왕)’을 달성해 정점을 찍었다. 특히 FA컵에서 통산 14골을 뽑았는데, 이는 역대 1위다.

2009 ACL 결승전에서 활약할 당시 노병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2009 ACL 결승전에서 활약할 당시 노병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300차례가 넘는 모든 경기가 생생하다. (전남에서 뛴) 2005년 3월 FC서울과의 홈 개막전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후반 교체 투입돼 뛰고도 ‘정말 축구선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원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뛰는 내가 너무 행복해 소름이 끼쳤으니…. 포항에선 우승하고 (지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 달려가 ‘아들이 이렇게 성장했다’고 알린 일본 도쿄에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강렬하고. 대구에선 당연히 통산 300경기를 소화한 순간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노병준은 아직 제2의 삶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부끄럽진 않다. 그만큼 어제와 오늘에 충실했다는 의미니까. 현역으로서 가능한 B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했지만, 지도자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가족과 상의도 했는데 1년쯤 푹 쉬려고 한다. 이것저것 생각해보려고 한다. 가능하면 유럽, 남미를 찾아 현대축구의 흐름을 살펴볼 계획도 있다. 물론 백수생활이 마냥 길어지진 않을 것 같다.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성격도 있고.”

영원한 작별이 아닌, 짧은 헤어짐의 인사 ‘소 롱(So Long)’을 외친 노병준은 그렇게 다음 단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노병’은 죽지 않았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 노병준은?

▲생년월일=1979년 9월 29일
▲키·몸무게=177㎝·67㎏
▲포지션=미드필더(MF)
▲출신교=동래고~한양대
▲프로 경력=전남 드래곤즈(2002~2005년), 그라츠AK(오스트리아·2006~2007년), 포항 스틸러스(2008~2013년·울산현대 임대 2010년 후반기), 대구FC(2014~2016년)
▲K리그 통산 성적=331경기 59골 26도움
▲국가대표 경력=U-20 대표팀(1998년), A매치 6경기 1골

대구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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