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아들 야구의 길로 이끌고, 10년째 매번 홈경기 찾아 격려
아들은 시구자로 부친 모셔 효도
23일 잠실야구장에서는 두산 오재원(31)의 ‘1000경기 출장 기념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경기의 시구는 오재원의 아버지 오병현 씨(58)가 했다. 오재원은 홈 플레이트에서 아버지의 공을 받았다.
2004년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재원은 9라운드 72순위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그해 프로 지명을 받은 선수는 72명. 오재원은 프로행 ‘막차’에 겨우 올라탔다.
“살아남기 바빠 지명 순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는 오재원은 빠른 발과 근성 있는 플레이로 국가대표 2루수까지 됐고, 지난해에는 두산의 주장을 맡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다. ‘악바리 노력형’이라는 평가에 그는 “창피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야구 잘하고 싶어서 그랬죠. 자꾸 그런 면이 부각되는데 그렇게 안 하는 선수 한 명도 없거든요. 정말 창피해요. 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저도 어쨌든 살아남아야 했으니 좌충우돌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고요.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아이고.”
그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잠실야구장을 드나들던 ‘엘린이(LG+어린이)’였다. “아버지가 LG 팬이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특히 서용빈 코치님을 좋아했죠. 노찬엽 코치님까지, 옛 LG 선수들 다 좋아했어요.”
아들 때문에 아버지는 평생 응원해 온 팀의 ‘라이벌’인 두산을 응원하게 됐다. 오재원의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아버지는 매일같이 야구장을 찾아왔다. 오재원은 “집이 (야구장) 바로 앞에 있어요. TV로 볼 바엔 와서 보는 게 낫다면서 거의 마실 나오시듯 오세요. 한번은 ‘아빠! 안 지겨워?’ 그러니까 ‘너도 네 아들 낳아봐’ 이러시더라고요. 전 야구 안 시킨다고 했어요”라며 웃었다.
그 정도 열정이면 야구 훈수도 많이 두실 것 같다고 묻자 오재원이 ‘버럭’했다. “연습하는 시간까지 하루에 몇 시간을 야구만 하는데 집에 가서 또 야구 얘기요? 절대 안 하시죠. 아, 가끔 술 취하시면 한 번씩 하세요. 그러면 전 방으로 들어가 버리죠. 효자는 아니에요.”
프로야구 126번째 1000경기 출장 기록을 쓴 그에게 남은 야구인생의 목표를 물었다. “선수생활을 정말 좋게 끝내고 싶어요. 이제는 야구 한 날보다 할 날이 더 적잖아요. 흰머리 날 때가 다가오니까. 아빠 닮아서 지금도 새치는 나요(웃음).” 효자는 아니라면서도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오재원의 입가는 들썩였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야구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기억으로 ‘1000경기 출장을 못 채운 것’을 꼽았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쉽게 생각했더니 프로생활 10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하루하루 야구에 온 힘을 쏟아 부은 오재원은 그렇게 1000경기를 치른 베테랑의 자격으로 아버지를 잠실야구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웠다. 이쯤 되면 부정할 수 없는 효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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