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베이스볼] Mr.사이클링히트 박건우 “두산 주장이 꿈”

두산 외야수 박건우는 16일 광주 KIA전에서 역대 20번째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그는 “언젠가는 리더십 있는 주장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스포츠동아DB

■ ‘사이클링히트 사나이’의 포부

3루타 타구 잡히는 줄…하늘이 도왔다
정수빈 등 잘나가는 동기생 부러웠다
언젠간 ‘리더십 강한 캡틴’ 되고 싶어

타자가 정확히 때려낸 공은 외야로 향했다. 빨랫줄 타구는 중견수 정면으로 향했고, 안타를 기대하던 타자는 자신의 타구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낙하지점을 잘못 포착한 중견수 뒤로 타구가 넘어가자 타자는 있는 힘껏 속도를 올려 3루에 도달했다. 슬라이딩 후 타자는 한 손을 불끈 쥐고 이내 환하게 웃었다. KBO리그 역대 20번째 사이클링히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주인공은 두산 외야수 박건우(26). 그는 16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KIA 3명의 투수를 상대로 2루타(5회)∼홈런(6회)∼단타(8회)∼3루타(9회)를 차례로 때려내고 사이클링히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팬들에게 박건우란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하루였다.

17일부터 대구에서 열린 삼성 3연전을 앞두고 만난 박건우는 축하 인사에 “이제 (사이클링히트는) 과거의 일이 됐다. 하루 지나니까 흥분이 가라앉은 느낌”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자신의 응원가 속 ‘Mr.건우’에서 ‘Mr.사이클링히트’로 거듭난 박건우를 18일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났다.

● “사이클링히트? 하늘이 도왔다!”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를 회상한다면.

“9회 타석에 들어서면서 사이클링히트에 3루타 하나가 남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까지 내 통산 3루타가 2개였다.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볼넷으로 걸어나가려는 마음만 있어서 볼 2개가 먼저 들어온 뒤 조금 안심한 상태였다.”

-3루타 장면을 보면 1루까지 천천히 걸어가다 급작스레 속도를 올렸다.

“치는 순간 아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공이 뒤로 빠지고 강동우 1루코치님이 ‘빨리 뛰어’라고 소리치셔서 그 때부터 냅다 달렸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

-그동안 사이클링히트를 실제로 본 적은 있었나.

“경기 중에 직접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2년 전에 오재원 선배가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는 장면도 TV로 봤는데, 보면서 ‘와, 어떻게 하루에 안타를 4개나 칠 수 있을까’하며 감탄만 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사이클링히트를 해내서 꿈만 같다.”

● 포수와 내야수를 거쳐 완성된 ‘외야수 박건우’

-야구선수의 꿈은 언제 키웠나.

“사실 초등학교 2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야구선수들이 쉬는 시간에 종종 축구를 하듯이, 축구부에서도 가끔 야구공을 갖고 놀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네야구도 같이 하게 됐다. 하루는 함께 야구하던 형이 역삼초 야구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거다. 그걸 보고 부모님께 야구하겠다고 떼를 써 야구부에 들어갔다. 실은 그 형이 나보다 야구를 못해서 이기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승부욕이 강했다.(웃음)”

-고교 시절 내야를 봤고, 지금은 외야수를 맡고 있다.

“처음엔 투수를 하고 싶었는데 당시 역삼초 감독님께서 나에게 포수를 시키셨다. 남들보다 공을 잘 잡았던 면도 있었지만, 감독님이 ‘포수를 보면 시야가 넓어진다. 어차피 너는 나중에 포수를 할 체격이 아니니까 지금 포수를 하면 야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선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포수를 봤고, 이후 유격수와 3루수를 주로 맡았다. 외야를 보기 시작한 건 고3부터다.”

-2009년, 외야 유망주로 두산에 입단한 뒤 2년 만에 군 입대를 결정했다.

“군대(경찰청야구단)에 일찍 가서 얻은 보람이 하나 있다. 고2 때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3루수를 보다가 송구 실책 2개를 한 뒤부터 내야 송구를 할 때마다 손에 땀이 나고 제구가 잘 안되는 현상이 있었다. 투수들의 ‘스티브블래스 증후군(투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현상)’ 같은. 이걸 고쳐야지 하다가 상무에서 외야수를 보며 로진백을 뒷주머니에 챙겨나갔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편안한 느낌이 들면서 송구 문제가 사라졌다. 이거 하나 고친 것만으로도 군대에 일찍 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 후 백업으로 뛰다 주전 좌익수 김현수(28·볼티모어)가 팀을 떠났다. 선배의 이적은 본인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김)현수 형이랑은 너무 친하다. 형이 옆에 없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주위에선 ‘너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해줬지만, 정작 불안했다. ‘저 빈자리를 내가 직접 뛰면서 채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입단 8년 만에 어엿한 주전선수가 됐다.

“아직도 내가 주전이라는 생각은 안하고 있다. 주전은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언제나 팀의 주축을 맡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요새 내가 컨디션이 좋아서 타격이 잘되고 있지만, 완벽한 주전은 아직 아닌 것 같다.”

-동기생인 안치홍(KIA), 오지환(LG), 정수빈(두산)보다는 늦은 감이 있다.

“처음에는 잘 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동기들은 금방 1군 주전이 됐는데 나는 아직 2군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나는 이 시점이 늦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전혀 늦지 않다.”

● 앞으로의 꿈은 ‘주장 박건우’

-올 시즌 경기 중 펜스에 부딪혀 부상(5월29일 잠실 LG전)이 있었다.

“어렵더라도 잡을 수 있는 공은 어떻게든 따라가서 잡아야 되지 않겠나. 지금은 몸을 아낄 때가 아니다. 그럴 나이도 아니고. 무조건 부딪혀야 된다. 삼성 (박)해민이 형 봐라. 정말 열심히 뛰지 않나.”

-최근엔 타격 상승세가 눈에 띈다. 어느 타순이든 공격적인 성향이 인상적이다.

“솔직히 편한 타순은 없다. 어디든 걱정된다. 선두타자로 뛰면 출루를 많이 해야 되는데 한번만 치면 5타수 1안타, 6타수 1안타다. 그럼 안 되지 않겠나. 공격적인 성향은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초구를 정말 좋아했다. 프로에 와서는 공을 좀 더 보려고 하는 건 있지만, 결정구가 오기 전에 2스트라이크 안에서 승부를 보려고 한다.

-최근 활약에 부모님께서 가장 좋아하실 듯하다.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무덤덤해하신다. 내가 그동안 야구를 잘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께서 내색을 많이 하시지 않으셨다. 그래도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 후엔 부모님께 우승 반지와 상금을 모두 갖다 드렸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서. 그러니까 부모님께서 많이 우시더라. 사이클링히트 때도 경기 끝나고 감사전화를 드렸다. 그러나 이게 효도의 끝이 아니다. 동기들처럼 야구로서 더욱 효도하고 싶다.”

-앞으로 어떤 야구선수가 되고 싶나.

“두산에 있으면서 홍성흔, 김재호, 오재원 선배가 주장으로 팀을 이끄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도 언젠가는 선배들처럼 리더십 있는 선수가 돼 한 팀의 주장을 맡고 싶다. 특히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가 신뢰하는 주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작지만 큰 야망이랄까.(웃음)”

● 두산 박건우는?

▲생년월일=1990년 9월 8일
▲출신교=역삼초∼이수중∼서울고
▲키·몸무게=184cm·80kg
▲프로 입단=2009년 두산 입단(2009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0순위)
▲프로 경력=두산(2009년)∼경찰청야구단(2011∼2013년)∼두산(2013년∼현재)
▲2016시즌 성적=61경기 타율 0.345(203타수 70안타) 7홈런 33타점 (19일 현재)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