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챔프행 이끈 OK저축의 ‘시몬 동기부여 전략’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17일 05시 45분


OK저축은행 시몬. 스포츠동아DB
OK저축은행 시몬. 스포츠동아DB
지난 시즌 치명적 부상에도 “함께 가자”
올핸 깜짝 송별이벤트…시몬 투혼 보답

‘NH농협 2015∼2016 V리그’의 키워드는 동기부여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려있던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선택했는데, 7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선수구성에 큰 변화가 없던 팀이 동기부여를 통한 긍정적 생각으로의 전환만으로도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놀라운 변화였다. OK저축은행-삼성화재의 남자부 플레이오프(PO)의 성패를 가른 것도 동기부여였다. 두 팀의 운명을 가른 이벤트가 있었다.

● 시몬, 우승을 위해 무릎 인대를 희생하다!

지난 시즌 PO를 앞두고 OK저축은행은 비상이 걸렸다. 팀의 대들보 시몬(사진)의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예견된 결과였다. 이탈리아리그에서부터 좋지는 않았다. 이런 시몬을 센터와 라이트 겸용으로 썼다. 팀 형편상 어쩔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선 한 경기에 많아야 공격 점프 10∼20번을 하던 선수가 엄청난 하중을 감내하고 뛰어줬다. 그 헌신 덕분에 팀은 ‘봄 배구’에 진출했지만 탈이 났다. 한국전력과의 PO를 앞두고였다. 구단은 시몬에게 무릎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주사를 맞자고 했다. 시몬은 거부했다. 그 바람에 OK저축은행은 내부적으로 PO를 포기했다. 그러나 시몬은 인성도 슈퍼스타였다. 마음을 바꿨다. 통증을 참고 경기에 나갔다. 아파서 절룩이면서도 폭발적 공격을 했다. 창단 2년 만에 우승을 안겼다. 만우절의 기적이었다. 기적의 결과는 시몬의 인대 손상이었다. 뼈 조각까지 함께 돌아다녔다. 재활로는 해결되지 않을 상태가 됐다. 우승의 비싼 대가였다.

● “우리는 그런 팀이 아니다”는 한마디에 시몬의 걱정은 사라졌다!

휴가를 보낸 시몬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구단은 급했다. 비자 처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빨리 수술을 시켜도 시즌 도중에나 경기 출전이 가능해졌다. 아버지와 함께 온 시몬은 “무릎 아파”라고 우리말로 말했다.

이때 일각에선 2년 계약을 했던 시몬의 이적을 검토했다. 시몬의 부상 상태로 봤을 때 출장이 어렵다고 보고 수술 후 다른 리그로 이적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시몬도 그 얘기를 들었다. 수술을 앞두고 구단과 면담하던 자리에서 시몬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 시즌 거취에 대해 물었다.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시몬, 우리 그런 팀 아니다. 생각은 자유지만 끝까지 함께 갈 생각이다.” 시몬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몬이 재활하는 동안 구단은 임시로 쓸 외국인선수를 알아봤다. 시몬을 코치로 등록해놓고 몇몇 선수들을 테스트했다. 모두 기대이하였다. 훈련장에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은 “무리해서라도 내가 더 빨리 준비해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단은 그 결정에 고마워했다. 그렇게 해서 시몬은 올 시즌 개막전부터 출장했다.

●감사의 선물로 준비한 송별식, PO의 향방을 가르는 변수가 되다!

완벽하게 시즌 준비를 하지 못한 탓에 처음에는 고전했다. 점프가 예전 같지 않았다. 2라운드 막판부터 정상으로 돌아왔다. 팀이 선두권으로 치고나가는 시점과 일치했다. 5라운드 중반 또 다시 시몬의 체력이 떨어졌다. 세터 이민규도 다쳤다. 결국 현대캐피탈과의 정규리그 우승 경쟁에서 밀렸다.

5라운드 중반. 구단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이별하는 시몬을 위한 특별 이벤트를 구상했다. 2년간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에게 보답할 방안을 찾았다. 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외국인선수를 위한 송별 세리머니가 없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수많은 외국인선수가 왔다갔지만, 시즌이 끝나거나 계약을 마치면 미련 없이 작별했고 서로 남남이 됐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송별식이었다. 당초 PO를 마친 뒤로 생각했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부담이 없는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 이벤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구단은 많은 준비를 했다. 그동안의 활약 장면을 담은 영상에 시몬을 위해 스페인어 자막까지 넣었다. 3일 우리카드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을 위해 코트에 들어설 때까지 시몬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했다.

그리고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시몬은 감동했다. 외국인선수를 위해 배려해준 마음씀씀이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봄 배구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자각했다. 시즌 계약은 다 끝났고, 다음 시즌에는 브라질리그에서 뛰기로 결정한 시몬이 포스트시즌에서 최선을 다하는지의 여부는 온전히 선수 자신의 의지에 달린 문제였다. 시몬의 눈물을 본 김세진 감독은 희망을 봤다. PO를 앞두고 시몬에게 동기부여를 해준 최고의 이벤트였음을 확신했다.

그날 이후 시몬은 송명근과 미장원을 찾았다. 턱수염을 팀의 상징인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팀을 향한 충성심을 보여준 시몬은 삼성화재와의 PO 2경기에서 펄펄 날았다. 공격 점유율 46%, 성공률 57%를 기록하며 정규리그 이상의 수치를 작성했다. 2차전 4세트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확정시킨 점수도, 시리즈의 운명을 가른 1차전 1세트 마지막 점수도 시몬의 스파이크에서 나왔다.

공심위상(攻心爲上) 공성위하(攻城爲下),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상책이고 상대의 성을 공략하는 것은 하책이라고 했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누가 그 행사를 생각해냈는지 모르겠지만 선수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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