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V리그 감독들이 초반질주를 꿈꾸는 진짜 이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2일 05시 45분


도로공사 박종익 감독대행. 스포츠동아DB
도로공사 박종익 감독대행. 스포츠동아DB
PO좌절 느낀 순간 선수들 마음가짐 변화
의욕상실에 점프 낮고 범실 늘고 책임회피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겠지만, 2월 29일 김천에서 벌어진 ‘NH농협 2015∼2016 V리그’ 여자부 6라운드 흥국생명과의 홈경기에서 도로공사 선수들이 4세트에 느꼈을 심정이 아마도 이와 같았을 듯하다.

그 공격 하나에 힘들게 쌓아둔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린 도로공사 선수들

플레이오프(PO) 진출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던 도로공사는 3위 흥국생명에 2세트를 내주면 꿈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외국인선수 시크라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국내선수들끼리 똘똘 뭉쳐 더 ‘죽기 살기’로 경기를 했다. 3세트까지 2-1로 앞서던 도로공사는 4세트 고비를 넘지 못했다. 22-24에서 흥국생명 정시영의 공격이 코트에 꽂히는 순간, 도로공사 선수들이 정성껏 쌓아둔 공든 탑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장소연을 비롯한 도로공사의 몇몇 선수들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코트로 돌아왔지만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진 뒤였다. 그렇게 잘했던 도로공사 선수들의 플레이와 의지는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박종익 감독대행이 “표정 밝게 하고 서브 강하게 때려”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머릿속에 자리한 허탈감은 스코어에 그대로 반영됐다. 5세트는 흥국생명의 일방적 승리였다.

프로라면 모든 경기에서, 어떤 상황이든 관중과 팬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의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나마 도로공사는 시즌 마지막까지 희망이 남아있었고, 그 경기에서 여한 없이 플레이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팀들도 많다. PO 꿈조차 꾸지 못한 팀의 선수들은 시즌 마지막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할까.

꿈이 사라진 팀의 선수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준 사람은 김호철 전 현대캐피탈 감독이다. 그는 PO 진출이 좌절된 팀의 선수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점프의 높이를 들었다. 엄지와 검지를 넓게 펴고 “선수들이 하고자하는 의지가 없으면 딱 이만큼 점프가 낮아진다. 겉에선 알 수도 없다. 평소라면 최고의 타점에서 공을 때리고 상대의 공을 막아내지만, 마음속에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그 정점이 나오지 않는다. 경기를 이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마음가짐은 공을 향해 움직이는 동작에서도 나온다고 했다. “내가 반드시 저 공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과 대충 몸이나 다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프로리그는 긴 시즌이 기본이지만, 우리는 유난히 시즌 초반에 모든 것을 건다. 프로야구 한화 김성근 감독은 초반부터 스타트가 아닌 스퍼트를 한다. 프로배구도 마찬가지다. 팀의 상황에 맞춰 움직이지만 대부분 “초반에 상대에 뒤떨어지면 나중에 따라잡기 힘들다”며 서두른다. KB손해보험 강성형 감독도 시즌 구상을 물었을 때 “초반 경기 일정이 좋아 가능한 많은 승수를 따내고 싶다”고 답했다. 물론 그 말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은 전광인의 부상으로 계획했던 선수 구성이 되지 않자 호시우보(虎視牛步)를 택했다. 먼 앞을 보고 천천히 움직였다. 세터에 문제가 있자, 4라운드 마지막 날 강민웅을 데려오는 승부수까지 던졌다. 한국전력은 5∼6라운드에 상위권 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전력을 보여줬지만, 늦게 발동이 걸린 까닭에 실패했다.

감독들이 초반 질주를 꿈꾸는 진짜 이유는?

감독들은 선수의 마음가짐 변화를 무서워한다. 모든 팀이 시즌 목표로 삼는 PO 진출이 좌절됐다고 선수들이 느끼는 순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우리 감독은 잘리지 않을까’를 시작으로 ‘다음 시즌 내 위치는 어떻게 될까’를 먼저 떠올린다. ‘각자도생’의 시기다. 프런트에 치여 감독의 권위와 힘이 약한 구단일수록 선수들의 생각 변화는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의 지시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감독이 아무리 다그쳐도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순간반응속도가 느려지고 점프는 낮아진다. 상상하기 힘든 범실도 나오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결국은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평소 이런 문화를 심어놓지 못한 팀은 언제든지 공든 탑을 스스로 또는 허무하게 무너트리고 무너진다.

● KB손해보험, 4연패 마감

한편 1일 수원체육관에서 벌어진 남자부 6라운드 경기에선 KB손해보험이 풀세트 접전 끝에 한국전력을 3-2(25-14 18-25 22-25 25-19 15-12)로 누르고 4연패에서 탈출했다. KB손해보험은 10승째(25패)를 기록했다. 반면 홈 최종전을 치른 한국전력은 얀 스토크가 빠진 가운데 국내선수들이 분발했지만 21패째(14승)를 안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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