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치란 말이야”… 느림보 골퍼 경고 1호는 스피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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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HSBC챔피언십 1R… EPGA “각조 첫 선수 50초내에 샷”
또 어길땐 벌금 337만원 부과
스피스 “이해 안되는 판정” 반발

《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것은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집에서 보는 중계방송 경기도 엿가락처럼 늘어지면 졸음을 부를 수밖에 없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스포츠에서 경기 시간을 지연시키는 불필요한 행동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이유다. ‘시간과의 전쟁’에 세계 랭킹 1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스피드가 지배하는 스포츠 세계에 ‘거북이’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

‘거북이 골퍼’를 퇴출시키기 위해 칼을 빼든 유럽프로골프(EPGA)투어의 첫 희생양은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미국)였다.

스피스는 21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부다비 HSBC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EPGA투어로부터 ‘슬로 플레이’를 했다는 경고를 받았다. 전날 EPGA투어는 경기 지연을 막기 위해 각 조의 첫 번째 샷을 하는 선수는 50초, 그 다음 선수들은 40초 안에 샷을 하도록 했다. 제한 시간을 두 차례 어긴 선수에 대해서는 2800달러(약 337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이름도 공개하기로 했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에 따르면 같은 조에 편성된 스피스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리키 파울러(미국)는 4번홀로 갈 때 경기위원으로부터 “경기 시간을 측정 중이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스피스 조의 경기 진행이 느리다는 경고였다. 결국 8번홀에서 퍼트를 하던 스피스는 규정 시간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슬로 플레이 판정을 받았다. 스피스는 “(판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음 조는 페어웨이에 도착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우리 조가 늦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반발했다. 이날 스피스는 공동 7위(4언더파)를 기록해 매킬로이(6언더파·공동 3위)와의 자존심 대결에서도 판정패했다.

슬로 플레이어는 프로와 주말골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골프장의 골칫거리다. 미국의 골프 매거진이 주말골퍼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4%가 ‘코스에서 가장 열 받는 일’로 느림보 플레이를 꼽았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아마추어 골퍼가 지켜야 할 에티켓으로 ‘클럽을 결정한 뒤 샷을 하기까지는 30∼45초가 가장 적절하다’고 권고했다.

특히 프로 투어 대회에서 불필요한 경기 지연 행위는 동반플레이를 하는 선수의 경기 감각을 떨어뜨리고, 갤러리와 방송 중계를 보는 팬들을 지루하게 한다. 이 때문에 각 투어는 슬로 플레이를 막기 위한 규정을 둔다. PGA투어는 파3 홀의 티샷 때 첫 번째 선수에게는 60초, 그 다음 선수들에게는 40초의 시간을 준다. 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재미교포 케빈 나는 많게는 24번이나 하던 ‘왜글’(손목 풀기) 때문에 갤러리로부터 “빨리 쳐라” “방아쇠를 당겨라” 등 조롱 섞인 야유를 받기도 했다.

국내 프로골프도 거북이 골퍼 퇴출에 적극적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슬로 플레이를 몰아내기 위해 티오프 시간을 오전과 오후로 나눴고, 경기 진행이 늦은 선수에게는 벌금, 벌타, 출전정지 등의 징계를 내리고 있다. 지난 시즌 다승왕과 상금왕 등에 올랐던 전인지는 지난해 제주 서귀포 롯데스카이힐CC에서 열린 롯데마트 오픈 1라운드에서 40초 안에 샷을 마쳐야 하는 규정을 어겨 벌타와 함께 3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김효주와 이정민은 다음 샷 지점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방송 화면을 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KLPGA투어는 6시간까지 걸리던 경기 시간을 4시간 30분 안팎으로 줄였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도 샷 시간에 제한을 둬 첫 선수는 50초, 두 번째 선수부터는 40초 안에 티샷을 해야 한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스피스#매킬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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