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토픽] 자책골, 부지런한 수비의 얄궂은 함정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3월 18일 07시 00분


제주 수비수 이용은 K리그 클래식 개막 후 2경기 연속 자책골을 넣어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자책골은 부지런한 선수에게 가해지는 신의 심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팀 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제주 수비수 이용은 K리그 클래식 개막 후 2경기 연속 자책골을 넣어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자책골은 부지런한 선수에게 가해지는 신의 심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팀 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 좋은 수비와 자책골은 한 끗 차이…자책골의 세계

제주 이용, 전남전서 2경기 연속 자책골
2011년 이용기 이어 K리그 2번째 기록
이용 “동료 타박 없어…다시 수비 집중”

골키퍼 자책골도 5번…지난해에만 3번


16일 열린 전남-제주의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2라운드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다. 제주 수비수 이용이 자책골을 넣었다. 9일 수원과 홈경기에 이은 2경기 연속 자책골이다. 2경기 연속 자책골은 2011년 4월 경남 이용기(현 상주상무)에 이은 두 번째 진기록. 자책골에도 일정 기준이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슛 또는 패스한 볼이 골대와는 상관없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때 상대 선수의 신체에 접촉돼 득점이 될 경우 접촉한 수비수의 자책골로 인정한다’고 규정한다. 쉽게 말해 슛, 패스가 골문으로 향하다가 수비수 맞고 들어가면 공격수 득점이고 골문으로 가지 않다가 수비수 맞고 득점이 되면 자책골이라는 뜻이다.

● 자책골은 신의 심술

K리그에서 자책골은 출범 이후 지금까지 225골(188명) 터졌다. 유경렬이 4골로 1위. 제주 이용을 포함해 신성환, 안현식, 이싸빅, 김영철, 김진규 등 6명이 3골로 공동 2위다. 수비수가 많다. 당연하다. 자책골은 대부분 수비수들이 골대 앞에서 상대 크로스를 걷어 내려다 나온다. 2경기 연속 자책골의 불명예를 안은 이용과 이용기가 기록한 4번의 자책골 중 3번도 이렇게 들어갔다.

자책골 상위 랭커 상당수가 스타플레이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유경렬을 비롯해 김영철, 김진규 등은 국가대표 출신이다. 자책골 장면을 잘 되새겨보면 이해가 간다. 공격 팀의 낮고 빠른 크로스가 수비수를 그대로 통과하면 자책골이 생길 이유가 없다. 이 경우 골대 앞 공격수가 완벽한 찬스에서 자연스럽게 득점한다. 자책골은 수비수가 사력을 다해 크로스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용은 “크로스가 넘어오는 순간 나를 넘어가면 주위의 공격수가 득점하게 되니 어떻게든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발을 뻗게 된다”고 설명했다. 좋은 수비와 자책골은 한 끗 차이다. 수비수 맞고 밖으로 나가면 칭찬 받고 굴절돼 골문으로 들어가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다. 선수들은 이 사실을 잘 알기에 경기 중 자책골을 넣은 동료를 비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용은 “(나를 타박한 선수는) 아예 없었다. 선수들, 선생님 모두 다독여주셨고, 힘을 내서 다시 수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비수가 자책골을 넣어도 본연의 임무인 수비만 잘 했다면 경기 후 감독에게 칭찬 받는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이런 이유로 자책골은 열심히 잘 하는 선수에게 가해지는 ‘신의 심술’이라 볼 수 있다.

● 황당 자책골 세계

K리그에서 골키퍼가 자책골을 넣은 경우는 5번이다. 1986년 제주 박연혁이 처음으로 골키퍼 자책골을 넣었고, 2009년 부산 이범영이 23년 만에 이 기록을 세웠다. 작년에는 이례적으로 골키퍼 자책골이 3번이나 나왔다. 클래식의 전북 최은성, 챌린지(2부 리그)의 안양 백성우와 안산 경찰축구단 유현이 주인공이다. 골키퍼 자책골은 크로스를 자기 골문으로 잘못 펀칭하거나 놓치면서 생긴다. 최은성의 자책골은 예외다. 당시 전북-성남 경기에서 선수가 다쳐 성남이 터치라인 밖으로 볼을 차냈다. 이 경우 전북이 다시 공격권을 성남에 넘겨주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전북 이동국이 볼을 길게 준다고 찬 것이 그대로 골이 돼 버렸다. 득점은 인정됐지만 전북은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경기가 재개되자 공을 받은 골키퍼 최은성이 자신의 골문에 차 넣었다.

팀을 울리고 웃겼다는 말을 종종 쓴다. 한 경기에서 골과 자책골을 모두 넣은 선수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임생, 이기형, 한정국, 유경렬 등 11명이 이 기록을 갖고 있다. 특히 이임생은 1997년과 2002년, 두 번이나 한 경기에서 골과 자책골을 동시에 기록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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