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유준수, 잃어버린 3년…한 방으로 설움 날리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3월 14일 07시 00분


울산 현대 유준수가 12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질주하고 있다. 유준수는 이날 3년여 만에 프로 데뷔골을 터뜨리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진제공|울산 현대 축구단
울산 현대 유준수가 12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질주하고 있다. 유준수는 이날 3년여 만에 프로 데뷔골을 터뜨리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진제공|울산 현대 축구단
■ 울산 유준수

인천 입단 2년만에 방출…실업리그행
대오각성 후 공격수서 수비수 연착륙
작년 12월 울산 조민국 감독 깜짝 호출

챔스리그 조별리그 가와사키전 결승골
은사 믿음에 화답·프로 첫골 기쁨 두배

“오랜 시간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아직도 꿈만 같다.”

전날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목소리였다. 12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H조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와 2차전. 울산 현대 유준수(26)는 후반 중반 수비형 미드필더로 교체 투입됐다. 그러나 이내 자리를 옮겨 김신욱과 최전방 공격수로 짝을 이뤘다. 역사는 후반 39분 이뤄졌다. 유준수는 오른 측면에서 이용이 올린 날카로운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 골망을 흔들었다.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최우수선수(경기 MVP)도 당연히 그의 몫. 2011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2013년 한국수력원자력(실업리그)을 거쳐 다시 K리그 클래식(1부)으로 돌아온 그가 마침내 프로 데뷔 골을 터뜨렸다.

● 새해 첫 소집에 접한 방출

2013년 1월3일을 잊을 수 없다. 유준수는 한달여의 휴가를 마치고 인천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프로 3년차. 아무것도 보여준 것 없이 2년의 세월을 어영부영 보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출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짐을 챙겨 훈련장을 빠져나오는 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는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첫 날 그런 일이 있었다.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두 달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서울 양천구의 집에서 허송세월했다. 이대로 은퇴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도 일었다. 그는 “인천에서 보낸 2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축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간절함이 생겼다”고 말했다.

유준수는 주목받는 선수였다. 2011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니폼을 입었다. 고려대 출신 공격수로 굵직한 대회에서 골을 넣으며 유명해졌다. 당시 인천 허정무 감독은 유준수를 극찬하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구단에선 유병수(FK 로스토프)와 유준수의 대형 투 톱에 큰 기대를 걸었다. 자신만만했다. 10골10도움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2년간의 기록은 초라했다. 27경기 출전 1도움. FA컵에서 아마추어 연세대를 상대로 1골을 넣었을 뿐이다. 그는 “2년을 그냥 허비했다. 많은 스포트라이트에 자만했던 것 같다. 당연히 잘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2년차에는 기회도 없었고 몸 상태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동료 소개로 실업리그 한국수력원자력과 끈이 닿았다. 자존심이고 뭐고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도록 손 내민 구단이었다. 공백 때문에 쉽게 주전으로 뛸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축구가 간절했고 즐거웠다. 그는 “개인적인 성장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잃어버린 예전 모습을 되찾으려고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시즌 중반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며 연착륙했다.

● 조민국 감독의 전화 한 통

작년 12월 중순의 어느 날. 낯선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실업리그 최강자 울산미포조선을 우승으로 이끌고 프로구단을 맡은 조민국 감독이었다. 말수가 적은 감독답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유준수는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깜짝 놀랐다. ‘울산에 와서 경기를 뛰든 못 뛰든 간에 경험을 해보는 게 좋지 않겠나. 백업은 가능하고 열심히 해보자’고 말씀하셨다”며 이적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울산의 첫 공격경기였던 AFC 챔스리그 웨스턴시드니 원정은 합류하지 못했다. 18명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포항과 개막전도 먼발치에서 지켜봤다. 그래도 언젠간 주어질 기회를 잡기 위해 성실하게 몸을 만들었다.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을 앞두고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 감독은 “원래 다른 선수를 넣을까 고민했다. 근데 유준수가 뭔가 해줄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후반 중반이 지나자 코칭스태프가 유준수를 찾았다. 그는 “몸을 충분히 풀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호출이 왔다. 어디로 들어갈지 몰라 물어볼 정도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공격가담 하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경기는 득점 없이 긴박하게 이어졌고, 코칭스태프는 다시 유준수를 공격수로 올렸다. ‘신의 한수’였다. 유준수는 결승골로 은사의 믿음에 부응했다.

그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다. 울산은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쉽게 뛸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백업으로 역할을 해야 된다. 보탬이 되고 희생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소박한 목표를 전했다. 이어 “1골로 제가 크게 올라왔다거나 성장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밑바닥을 찍고 간절함을 알고 있어 최선을 다할 뿐이다”고 했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이렇게 적혀있다. “the past is in the past(과거는 과거일 뿐).” 유준수는 아픈 과거를 딛고 오늘도 한발 더 내딛는다.

● 유준수 프로필

생년월일 : 1988년 2월 28일
신체조건 : 184cm, 80kg
포지션 : 수비수
학력 : 경신중-안동고-고려대
소속팀 : 2011∼2012 인천 유나이티드 / 2013 한국수력원자력(실업리그) / 2014∼ 울산 현대
프로경력 : 27경기 1도움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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