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네이터’ 차두리(34·FC서울)가 다시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그는 6일 열린 그리스와 원정 평가전(한국 2-0 승) 명단에 전격 포함됐다가 불의의 부상으로 하차했다. 지난 달 25일 센트럴코스트(호주)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1차전 홈경기에서 풀타임을 뛴 뒤 허벅지 통증을 느껴 정밀검진을 받았는데, 왼쪽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이 찢어졌다. 2∼3주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이었다. 2년3개월 만의 대표팀 꿈은 허망하게 물거품이 됐다. 차두리는 좌절하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재활에 힘썼다. 차미네이터라는 별명다웠다. 회복속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얼마 전 팀 훈련에 합류했고, 11일 중국에서 벌어지는 베이징 궈안(중국)과 챔스리그 원정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출전도 가능할 전망이다. 최근 한 달 사이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맛 본 차두리의 심정을 그의 일기 형식으로 꾸며봤다. 서울구단 관계자와 차두리 측근에게 들은 내용을 토대로 구성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
센트럴코스트전 전반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허벅지가 따끔 했습니다. 직감적으로 근육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축구선수들, 특히 저처럼 많이 뛰는 좌우풀백들은 허벅지 부상을 종종 당하기 때문에 다쳤다 싶으면 감이 옵니다. 이상이 있다는 걸 느낀 순간 왜 바로 교체사인을 안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 정도 베테랑이 투혼을 발휘할 때랑 물러설 때도 구분 못하냐고요. 하지만 저는 최용수 감독님께 교체해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러기 싫었습니다. 물론 아예 게임을 못 뛸 정도라면 당연히 신호를 보냈겠죠.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페이스 조절만 잘 하면 무리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대표팀 소집을 눈앞에 두고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팀 내 최고참이 시즌 개막전부터 조금 아프다고 바꿔달라고 하면 팀 사기가 어떻게 되겠어요? 대표팀 소집 직전이라 몸을 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어요? 물론 FC서울은 어느 팀보다 끈끈한 동료애를 갖고 있기에 저를 오해 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예전에 오른쪽 햄스트링을 다친 적은 몇 번 있는데 왼쪽은 오랜만이네요. 차미네이터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나봅니다 ^^; 저는 90분을 뛰었고 팀도 기분 좋게 이겼습니다. 게임 끝나고도 통증이 있어 정밀검진을 받았는데 역시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네요. 2∼3주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어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대표팀 합류는 당연히 무산됐고요.
속상했냐고요? 당연하죠. 늘 가슴에 품어왔던 대표팀이었는데…. 하지만 걱정하시는 것만큼 좌절하거나 비통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표선수라는 건 정말 큰 자부심이죠. 월드컵대표팀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저 역시 대표팀에서 멀어졌던 지난 2년 동안 태극마크를 다시 달기위해 부단히 땀을 흘렸어요. 하지만 꼭 ‘대표선수여야 한다’거나 ‘월드컵에 가겠다’ 이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보다 객관적으로 떳떳하게 검증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그리스전에 뛰지 못한 건 아쉽지만 제 기량을 다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는 만족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회복도 빠르네요. 생각보다 일찍 팀 훈련에 합류 했습니다. 우리 팀이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개막전에서 전남에 져 속상했지만 다음경기에 집중해야죠. 11일 베이징 궈안(중국)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원정 명단에 저도 포함 됐습니다. 통증이 사라졌으니 뛸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듭니다. 아시다시피 베이징 궈안에는 작년까지 우리 팀 주장이었던 (하)대성이가 있잖아요. 대성이가 기술이 좋고 시야가 넓어 조심해야겠지만 우리가 100% 실력만 발휘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봅니다.
브라질월드컵에 갈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느냐고요? 그건 홍명보 감독님께 물어봐 주세요. ^^
전 요즘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늘 되새깁니다. 엔트리 발표 전까지 평가전도 없으니 FC서울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는 일만 남았습니다. 작년에 안타깝게 놓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또 리그에서도 팀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뛸 겁니다. 그게 지금 제가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많이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