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풀스토리] 가을에 대구구장에 서는 날 기다리며… 정현욱 “믿어요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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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0월 15일 07시 00분


LG 정현욱. 스포츠동아DB
LG 정현욱. 스포츠동아DB
#1. 2012년 11월 17일

새벽에 휴대폰 벨이 울렸습니다. “형 믿고 와라.” 그 전화 한통으로 삼성 정현욱(사진)은 LG 정현욱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야구인생의 첫 번째 팀은 1998년부터 동고동락해왔던 삼성이었죠. 그러나 프리에이전트(FA)가 되자 삼성에 남을 수 없는 사정이 생기더군요. 정현욱이 FA 시장에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17일 여러 곳에서 여러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러나 정현욱의 선택은 새벽에 가장 먼저 직접 연락해온 김기태 감독의 LG였습니다. “언제나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김기태라는 인격을 믿었기에 결정한 상경이었습니다.

#2. 2013년 10월 5일

1위가 아니라 2위였습니다. 삼성 시절에는 당연한 줄 알았던 4강입니다. 그런데 5일 대전에서 넥센이 한화에 패하고, 잠실에서 LG가 두산에 역전승을 거둬 2위를 확정한 순간, 뭉클한 마음이 밀려든 것은 왜일까요. LG에 입단하고 스프링캠프에 갔을 때부터 알았습니다. 이 팀이 얼마나 죽기 살기로 열심히 훈련하는지를. 10년 넘게 가을야구를 못한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그 사무친 응어리가 이날 비로소 풀렸다는 것을.

#3. 2013년 10월 24일

정현욱의 지금 당장 목표는 10월 24일 대구구장에 LG 유니폼을 입고 가는 것입니다. 이 말은 LG가 플레이오프(PO)를 통과해 삼성과 이날 한국시리즈 1차전을 치른다는 얘기죠. 삼성을 떠날 때 후배들이 “한국시리즈에서 보자”고 했는데 보란 듯 현실화하고 싶습니다. 당시만 해도 LG는 한화, NC와 더불어 3약으로 평가됐죠. 4등만 해도 성공일 줄 알았는데, 이제 삼성과 우승을 다투는 위치로까지 올라섰네요. 일각에선 또 ‘LG는 가을야구 경험이 없다’고 저평가하지만, 1년간 이 팀에 몸담으며 느낀 바에 따르면 LG만의 독특한 기운을 모르는 사람들이 꺼내는 소리 같습니다.

삼성에선 투수진의 리더였지만 LG에선 그러지 않습니다. 봉중근, 류택현, 이동현, 이상열 등 동료들을 믿고 동화되려고 힘쓰는 쪽입니다. 곁에선 ‘전반기에 잘 했으니 괜찮다’고 위로하지만, 후반기만 생각하면 팀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패전처리든 뭐든 맡기면 혼신을 바쳐 던질 뿐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습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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