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화합 부국 꿈 싣고 칠순 노장 633km 질주

  • 동아일보

4선의원 출신 유준상 정보기술연구원장 4대강 따라 국토종주 마라톤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이 11월 29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연구원 옥상에서 ‘633km 국토달리기’ 코스를 그린 기념티셔츠를 입고 활짝 웃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이 11월 29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연구원 옥상에서 ‘633km 국토달리기’ 코스를 그린 기념티셔츠를 입고 활짝 웃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1월 27일 오후 2시 부산 사하구 낙동강 하굿둑. 한 70대 남자가 차디찬 강바람을 맞으며 강변을 달렸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꼭 뛰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의 옷엔 ‘통일 대한민국’이란 문구와 푸른색 한반도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하굿둑 자전거길 인증센터에 도착해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겸 대한롤러경기연맹회장(70)이 633km에 걸친 국토 달리기를 끝내는 순간이었다.

○ 칠순에 달린 633km

유 원장은 10월 3일 인천 아라서해갑문에서 대장정의 출발선을 끊었다. 그 후 팔당대교∼충주 탄금대∼상주 상풍교를 거쳐 낙동강 하굿둑에 이르는 633km 길이의 4대강 자전거길을 20차례에 나누어 달렸다. 수도권 지역을 뛸 땐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했다. 지방 코스는 금요일 오후부터 그 지역으로 내려가 일요일 오후까지 달렸다. 하루 평균 30여 km를 뛰는 강행군이었다.

힘든 도전이었지만 오가며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힘을 줬다. 경남 합천에서 만난 중년의 세르비아인 뮬러 씨는 “난 인천에서 부산까지 4대강 자전거길을 다섯 번이나 왕복했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부산 인근에서 만난 20대 대학생은 “난 반대로 부산에서 인천까지 도보여행을 하고 있다. 서로 꼭 끝까지 해내자”고 다짐했다. 유 원장은 “구간마다 인증센터에 들러 도장을 찍는 재미도 쏠쏠했다. 4대강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우리나라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처음 깨달았다. 해외여행 갈 필요가 없더라”며 웃었다.

○ 낙선의 아픔 달래준 마라톤

유 원장은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39세에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14대까지 내리 4선을 했다. 잘나가던 그에게도 시련은 왔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으로 옮겨 16대(2000년), 17대(2004년) 총선에 서울 광진을 후보로 나섰으나 연패했다.

유 원장이 마라톤을 시작한 건 잇따른 낙선의 아픔을 떨치기 위해서다. 한 후배가 “뛸 때만큼은 머릿속이 깨끗해진다”라고 한 말에 솔깃했다. 유 원장이 2007년 1월 처음 마라톤을 시작했을 땐 5km 달리기도 버거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차츰 거리를 늘려갔다. 같은 해 11월엔 드디어 한 마라톤대회에서 42.195km를 완주했다. 2009년엔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100km를 달렸다. 유 원장은 “65세에 첫 마라톤 완주를 하니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마라톤은 낙선으로 피폐해진 내 마음을 다독여줬다”고 했다.

○ 롤러스케이트로 남북관계 개선

유 원장이 633km 달리기에 나선 건 세 개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통일 대한민국’, ‘정보보안 강국’, ‘롤러스케이트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 그것이다. 전직 국회의원,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대한롤러경기연맹회장으로서의 바람을 각각 담았다.

유 원장은 스포츠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10월 중국에서 북한 롤러경기연맹 관계자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북한 측에 내년 4월 전북 남원에서 열리는 코리아오픈 국제롤러대회 참가를 제의했다. 유 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넷째 부인인 김옥이 북한 롤러경기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평양의 롤러경기장을 순시하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은 롤러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설명했다.

○ 멈추지 않는 70대 노장

유 원장은 12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 3일 동안 ‘섬진강 134km 달리기’에 나선다. 이번 633km 국토달리기 때 호남지역을 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동서화합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칠순 노장의 달리기가 지역 갈등 해소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몸 상태가 괜찮다면 영산강변 질주, 제주도 울트라마라톤 등에도 도전해 ‘국토 달리기 1000km’를 채울 계획이다. 그는 통일이 되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200km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대회를 여는 게 꿈이다. 과연 그의 소망대로 북녘 땅을 달릴 수 있을까. 70대 노장은 그때까지 달리기를 멈추지 않을 기세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마라톤#유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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