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현의 가을 다이어리] “유격수 박진만·3차전 3안타… 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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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7시 00분


SK 박진만. 스포츠동아DB
SK 박진만. 스포츠동아DB
몰랐습니다. 믿기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포스트시즌(PS)을 100경기(29일 현재 102경기)나 뛰었는지…. 그런데 주위에서 그만큼 가을무대를 밟았고, 그 중 절반이 넘는 경기(56게임)가 한국시리즈(KS)였다고 말합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늘 가을잔치에 초대되는 강팀에 있었다는 얘기니까요.

게임수만큼이나 사건도 많았습니다. 특히 1996년(당시 현대) 처음 밟았던 KS 무대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몇 차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당시 해태 이대진 선배를 상대로 8회 무사만루서 결승타(4차전 1타점 우전적시타)를 쳤습니다. 당시 이대진 선배의 직구는 레이저빔이었고 커브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던 시절이었는데, 그 선배의 초구를 받아쳐 안타를 만들어냈고 승부도 원점(상대 전적 2승2패)으로 돌렸습니다.

물론 늘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2004년 삼성과의 KS 9차전, 폭우 속의 혈투는 다시 떠올려도 아찔합니다. 8-6으로 앞선 2사 1·2루서 평범한 내야플라이(신동주)를 제가 놓쳤습니다. 공을 잡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정말 공만한 빗방울이 제 눈으로 쏟아졌습니다. 타구는 물이 흥건한 그라운드 위로 떨어졌고, 주자가 홈을 밟아 8-7. 이후 얼마나 안절부절 못 했는지 모릅니다. ‘타구가 나한테 안 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었습니다. 다행히 1루 땅볼로 우승을 확정지었지만,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2012년이 제게는 잊지 못할 KS가 될 것 같습니다. KS에서 3안타(3차전)를 친 것도 처음이지만, 제 자리(유격수)로 돌아와 치르는 큰 경기니까요. 늘 서왔던 유격수 자리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포스트시즌 100경기를 치르고도 플레이오프에서 신인 때보다 떨었지만, KS에선 저답게 뛸 수 있었고 다시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감사하고 또 행복합니다.

hong927@donga.com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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