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탄생] 박정현·김동기 투맨쇼, 인천팬 한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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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8일 07시 00분


1989년 10월 8일 열린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 연고팀 사상 처음으로 가을잔치를 치르는 날이었다. 김동기(왼쪽)의 연장 14회 끝내기 3점포와 박정현의 14이닝 역투는 역사적인 하루를 더 빛나게 했다. 스포츠동아DB
1989년 10월 8일 열린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 연고팀 사상 처음으로 가을잔치를 치르는 날이었다. 김동기(왼쪽)의 연장 14회 끝내기 3점포와 박정현의 14이닝 역투는 역사적인 하루를 더 빛나게 했다. 스포츠동아DB
10월8일…프로야구 역사속 오늘

가을은 ‘전설의 계절’이다. 포스트시즌의 명승부는 수십 년이 지나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누군가에게는 환호와 감격이 녹아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탄식과 눈물이 스며있는 전설. 스포츠동아는 2012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전설의 탄생’을 매일 연재한다. ‘과거 속 오늘’에는 어떤 가을의 전설이 만들어졌을까. 그날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올드 팬들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고, 새로운 팬들에게는 역사를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14이닝 완투승·연장 끝내기 홈런 합작
태평양, 인천 연고 첫 가을잔치서 환호
1982년 KS 3차전 박철순 진통제 투혼
1992년 KS 1차전 주루방해 번복 소동


1989년 10월 8일. 태평양 돌핀스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김성근 감독이 1988시즌을 마치고 OB에서 ‘사단’을 이끌고 정착한 팀이 태평양이었다. 화제를 만들었다. 오대산으로 갔다. 극기훈련을 했다. 얼음물에 들어가고, 맨발로 눈 속을 걸었다. 야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결과가 1989년 나타났다.

그해 태평양은 박정현∼정명원∼최창호의 투수 3총사로 바람을 일으켰다. 1년 전 유신고를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든 박정현은 눈부셨다. 장신의 잠수함투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싱커와 절묘한 컨트롤로 상대 타선을 압도했다. 1986년 MBC 김건우가 세웠던 신인 최다승 기록(18승)까지 넘어 19승을 따냈다. 태평양은 인천 연고팀으로는 사상 처음 가을잔치에 나섰다.

전철 도원역 앞 인천구장에 모인 팬들은 ‘이게 꿈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상대는 페넌트레이스 4위 삼성. 3전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벌어졌다. 태평양은 방망이가 문제였다. 삼성 선발 성준과 재일동포 김성길VS박정현의 투수전은 끝이 없었다. 연장 14회 초까지 무득점. 인천구장에 노을이 물들었다.

14회말. 김동기가 타석에 섰다. 2사 2·3루. 그해 홈런이 11개, 희생플라이가 4개였던 김동기의 배트가 돌았다. 인천구장 좌중간을 가르는 끝내기 3점홈런. 정규시즌 김성길에 21타수 2안타로 눌렸던 타자가 만든 홈런이었다. 그해 김성근 감독은 상대 타선을 무력화하려고 인천구장 외야 펜스의 철망을 높였다. “동물원 같다”는 놀림도 있었지만, 김동기의 타구는 그 철망을 넘어갔다.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김동기는 인천의 프랜차이즈 스타. 1986년 청보부터 1996년 현대까지 3벌의 인천 유니폼을 입고, 108홈런 435타점에 타율 0.262를 마크했다.

박정현은 14이닝 동안 8안타를 맞았지만 삼진 7개를 곁들여 팀에 역사적 승리를 바쳤다. 삼성 정동진 감독은 박정현 공략을 위해 2루 쪽으로 짧게 굴리라고 지시했고, 김성근 감독은 타구 속도를 줄이기 위해 인천구장 내야에 아침부터 물을 뿌렸다는 전설이 있다. 박정현은 1989년부터 4년간 두 자리 승수를 따내며 팀의 주축투수로 활약했다. 2000년 SK에서 2패만 기록한 채 은퇴했다. 통산 65승54패21세이브.

1982년 OB-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10월 8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렸다. 2차전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던 OB 박철순은 진통제 주사를 맞고서라도 던지겠다고 결심했다. 박철순은 원년 우승과 자신의 허리를 맞바꿨다. 김영덕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철순이가 오늘 야구인생을 걸었다”는 말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박철순은 6회 등판해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1988년 10월 8일은 빙그레 팬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 창단 3년 만에 처음 가을잔치에 나섰다. 플레이오프 1차전, 상대는 삼성. 빙그레 선발은 잠수함 한희민. 삼성의 왼손 베테랑 권영호와 힘 대결을 펼쳤다. 큰 경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전날 잠을 설친 한희민은 아침에 주스 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나온 뒤 6안타 5탈삼진 완봉승을 따냈다. 권영호도 5안타를 맞고 완투했다.

1992년 10월 8일은 빙그레 송진우에게는 악연의 날이었다.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이었다. 1회 무사 1루서 조성옥(작고)의 보내기번트를 1루 선상에서 잡으려다 쓰러지면서 타자주자와 충돌했다. 송진우는 1루에 공을 던져 아웃을 잡았다. 롯데는 공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충돌했으니 주루방해라고 주장해 11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판정은 번복됐다. 공식기록원은 아웃 번복 후 번트안타로 처리했다가 다시 희생번트 겸 투수실책으로 기록을 정정했다. 이 소동이 벌어지는 사이 빙그레 이희수 코치가 동일타자에 두 번이나 마운드로 올라갔다. 규정에 따르면 송진우가 강판돼야 맞았으나, 살기등등한 대전 관중을 의식해 경기는 그냥 진행됐다.

2006년 10월 8일 한화-KIA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한기주의 역사에 남을 보크가 나왔다. 한기주는 9회 무사 1루서 견제구를 던졌다. KIA 장성호는 전진수비에 들어간다며 베이스를 비우고 나왔다. 엉겁결에 공을 받았으나 베이스서 1m 이상 떨어진 곳. 김병주 1루심은 보크를 선언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b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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