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 맏언니의 힘은 강했다. 박세리는 최근 몇 년간 무적(無籍) 선수로 지내다 올해 초 KDB금융그룹을 새 스폰서로 얻었다. 그런 그가 23일 KDB그룹이 주최한 KDB대우증권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9년 4개월 만의 국내대회 우승이라 감격은 더했다. 박세리가 우승트로피 앞에서 활짝 미소 짓고 있다. KLPGA 제공
마치 시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린 것 같았다. 드라이버면 드라이버, 아이언이면 아이언, 모든 게 전성기 모습 그대로였다. 라운드당 평균 1.4타밖에 되지 않은 퍼트 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25승을 올린 ‘살아있는 전설’ 박세리(35·KDB금융그룹)가 9년 만에 한국 무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3일 강원 평창 휘닉스파크 골프장(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DB대우증권 클래식 마지막 날 3라운드. 한 타 차 단독 선두로 라운드를 시작한 박세리는 버디 9개와 보기 2개로 7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둘러 최종 합계 16언더파 200타로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은 1억2000만 원.
박세리가 국내 무대에서 우승한 것은 2003년 5월 MBC 엑스캔버스오픈 이후 9년 4개월 만이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한 것을 포함해 KLPGA 통산 14승째. 이날 박세리의 합계 성적은 김하늘(24·비씨카드) 등 3명이 보유하고 있던 54홀 기준 코스레코드(12언더파 204타)를 뛰어넘는 새로운 기록이다.
그만큼 이날 박세리의 플레이는 압도적이었다. 호쾌한 드라이버 샷에 이은 정교한 아이언 샷으로 홀컵 주변에 공을 붙였다. 신중하게 친 퍼트는 신들린 듯이 홀컵에 빨려 들어갔다. 9번 홀부터 12번 홀까지 4홀 연속 버디를 잡았다. 가장 어렵다는 16번 홀에서도 버디를 기록했다. 세계랭킹 1위를 질주하며 LPGA 무대를 호령하던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 듯했다.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후배들과 환하게 웃으며 포옹하던 박세리는 기자회견장에서는 눈물을 보였다. 그는 “미국에서 우승한 것보다 훨씬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고국 팬 여러분이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더 힘이 났다. 즐겁고 기쁘게 쳤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어 “1년에 한두 번 정도 국내 대회에 나가는데 언제 우승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력 있는 후배들이 많아 한국에서 우승하기가 더 힘들다”고도 했다.
LPGA투어에서도 2010년 벨마이크로 클래식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박세리는 “이번 시즌부터 전성기의 샷 감각이 차츰 돌아오고 있다”며 “국내 대회 우승으로 자신감이 생긴 만큼 남은 LPGA투어 시즌은 편안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3타 차 2위를 차지한 허윤경(22·현대스위스)은 최근 3개 대회 연속 준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화금융 클래식 이후 2주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최나연(25·SK테레콤)은 11언더파 205타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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