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종 제자, 울보 스승에게 꽃다발 바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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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근 평영100m 아시아新… 24년 만의 수영 금메달 환호
‘이인국 실격’ 부담 조순영 감독 제자의 한풀이 金에 또 눈물

금메달을 목에 건 임우근(25·충북장애인체육회)은 경기장을 나가며 관중석을 쳐다봤다. 태극기를 흔드는 장애인 수영 대표팀 조순영 감독(37)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제자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힘차게 던졌다. 2층까지 날아온 꽃다발을 받아든 스승은 참고 있던 눈물을 다시 쏟았다. 이번 대회에서 조 감독이 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조 감독은 1일(한국 시간) 잊지 못할 실수를 했다. 남자 배영 100m(S14·지적장애) 예선을 전체 1위로 통과한 이인국(17)과 함께 경기 시작 30분 전에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3분을 늦었다. 경기장에는 진작 오고도 지적장애 선수를 조금이라도 더 돌봐주다 출전시키려 했던 게 문제였다. 조 감독은 관계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읍소했지만 실격 판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제자는 눈이 빨갛게 부은 스승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대신 해낼게요.”

임우근은 6일 런던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 패럴림픽 남자 평영 100m(SB5·지체장애) 결선에서 1분34초06의 아시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2위는 0.92초 뒤에 터치패드를 찍은 니엘스 그루넨베르크(독일). 한국 수영이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88년 서울 대회 김종우(남자 배영 200m) 이후 24년 만이자 원정 대회에서는 처음이다.

“엄마, 칭찬 스티커 두 개 줄게. 집에서 같이 자요.”

대표팀이 합숙훈련을 시작한 2월 이후 조 감독은 다섯 살 외아들을 주말에만 잠깐 보곤 이천종합훈련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들이 눈에 밟혔지만 엄하게 훈련시키고 엄마처럼 돌봐야 할 선수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의 기량은 눈에 띄게 발전했다. 관계자들도, 선수들의 부모들도 크게 반겼다. 이인국의 부모가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결선에 올라가지도 못했다”며 되레 조 감독을 감싼 것도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걷지 못했지만 타고난 ‘독종’이었던 임우근은 스승을 위해 이를 더 악물었다. 엄마가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이려 했을 때 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며 버텨 결국 다시 젖을 먹었다는 그였다. 올 초 면역체계 이상으로 쓰러졌을 때도 “괜찮다”며 나흘을 버티다 결국 직접 119에 신고해 응급실로 실려 갔던 그였다. 고교 2학년 때 재활로 시작한 수영은 어느새 그의 인생의 전부가 돼 있었다. 2008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같은 종목 4위에 그친 뒤 4년 동안 수영장 아니면 병원에 있었다는 임우근은 갈고닦은 실력을 보란 듯이 발휘했다. 2006 남아공 세계선수권과 2008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그를 주눅 들게 하며 우승했던 랑헬 페드로(멕시코)는 라커룸에서부터 일부러 튀는 행동을 해 기선을 제압한 그의 기에 눌려 3위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스승의 날 임우근은 “새로운 기록을 찍겠다”는 메모와 함께 손바닥만한 금색 도끼를 조 감독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런던에서 두 팔로만 물살을 휘저으며 약속을 지켰다. “평생 이인국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 같다”며 힘들어하던 ‘울보 감독’을 모처럼 미소 짓게 한 금빛 역영이었다.

런던=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임우근#조순영#이인국#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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