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았다, 또 막았다…신이 된 사나이, 김승규!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28일 07시 00분


울산 현대 김승규. 사진제공|울산 현대
울산 현대 김승규. 사진제공|울산 현대
■ PO서 PK 두개 신들린 선방…그의 특별한 축구스토리

올시즌 부상으로 벤치만 지킨 후보 골키퍼
PK에 유독 강해 승부차기땐 어김없이 콜!
김영광 경고 누적으로 찾아온 선발 기회
PK 잇단 선방…6위 팀 챔프행 일등공신

축구에서 골키퍼만큼 중요한 포지션도 없다. 그러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환호는 대개 골을 넣은 공격수에게 향한다. 26일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울산 현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챔피언십’ 플레이오프(PO)는 달랐다. 울산 골키퍼 김승규(21)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원래 울산의 주전 골키퍼는 국가대표 김영광(28)이다. 김영광은 19일 서울과 6강PO, 23일 수원과 준PO에서 연속 경고를 받아 징계로 포항전에 나설 수 없었다. 올 시즌 부상으로 정규리그를 1경기도 뛰지 못했던 김승규가 포항전에 장갑을 꼈다. 김승규는 전반에 상대 모따와 황진성의 페널티킥을 연달아 방어하는 신들린 선방을 선보였다. 한 팀이 두 개의 PK를 얻은 것도 드물지만 이를 골키퍼가 전부 막아낸 것은 더 보기 힘든 일이다.

결국 울산은 후반 터진 설기현의 PK 결승골로 포항을 1-0으로 누르며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직행티켓도 확보했다.

김승규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승부차기에 강한 비결을 묻자 “나만의 노하우가 있지만 아직 경기가 남아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승하면 알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안 된다. 은퇴 후에 말하겠다”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슈메이커가 된 김승규를 만나기 위해 PO 다음날인 27일 오후 울산 클럽하우스 서부구장을 찾았다. 김승규의 멘토를 자처하는 선배 김영광이 함께 자리했다.

● 승부차기에 약한 김승규?

김승규는 2008년 포항과 6강PO에서도 승부차기 전문 골키퍼로 김영광 대신 투입돼 두 차례 상대 킥을 막아내며 승리를 이끌었다. 김승규의 K리그 데뷔전이었다. 23일 수원과 준PO 때도 승부차기에 돌입하기 직전 김영광 대신 들어갔다. 김승규의 투입에 긴장한 탓인지 수원 선수들이 연달아 볼을 밖으로 차내며 또 3-1로 이겼다.

김승규가 승부차기에 강한 비결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승부차기에 강하지 않다”고 했다. 학창시절을 통틀어 승부차기에서 이긴 건 2008년 포항과 6강PO, 23일 수원과 준PO 딱 두 번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승규는 U-19대표팀 시절이던 2008년 10월, 태국 4개국 대회 결승에서 호주와 만났다. 득점 없이 승부차기에 들어가 김승규가 상대 킥을 두 개나 선방했지만 한국선수 3명이 실축해 1-3으로 패했다. 김승규는 승부차기에 강했지만 운이 없었던 셈이다.

옆에 있던 김영광이 전문가의 눈으로 힌트를 줬다. 김영광은 “모따가 찰 때 승규가 오른 손을 들어 왼쪽으로 차게끔 유도했다. 모따는 정말 킥이 좋다. 그런데 킥하는 순간 승규가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진성이는 승규와 머리싸움에서 졌다. 진성이가 킥을 하기 전 승규는 왼쪽, 오른쪽으로 계속 움직여 한 쪽으로 다이빙할 것처럼 모션을 취했다. 진성이가 가운데로 찼지만 승규는 움직이지 않았다. 승규가 한 수 위였다”고 분석했다.

사실 경기 중 PK에서 골키퍼가 한 가운데 서 있는 건 드문 일이다. 김영광은 “승부차기 때는 5번 기회가 있으니 1∼2번 정도 가운데를 택할 수 있지만 경기 중 PK는 다르다. 한 쪽을 포기하고 몸을 날리는 게 일반적인데 승규가 과감했다”고 설명했다.

김승규는 “사실 두 번째 PK 때 모따가 진성 형에게 계속 귓속말을 했다. 그 때 가운데로 찰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가운데에 있자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울산|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