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없는 편지] 강윤구 “원준아, 우린 주눅 드는 스타일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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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7시 00분


넥센 강윤구. 스포츠동아DB
넥센 강윤구. 스포츠동아DB
넥센 강윤구가 롯데 고원준에게

롯데 고원준(21)은 넥센에서 가장 친한 선수를 물으면 “(강)윤구(21·사진)”라고 답한다. 2009년 입단 동기인 두 투수는 원당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함께 꿈을 키웠다. 비록 플레이오프(PO) 1·3차전에서 시련도 있었지만 강윤구는 “난 내 친구를 믿는다”고 했다.

원준아. 네 경기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네가 안타를 맞으면 마치 내가 맞은 듯 ‘아 어쩌나’ 싶기도 하고, 네가 잘 던지면 나도 무척 기분이 좋더라. 기억나니? 너랑 나랑 항상 붙어 다니던 2009년 초 말이야.

우리는 워낙 남 눈치를 안보는 성격이잖아. 신인인데 ‘개념’ 없다고 참 혼도 많이 났던 것 같다. 그 때 우리 별명이 ‘가스통’이었다며? 붙이면 터진다고…. 그래도 운동만은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정명원(넥센) 코치님이 러닝을 정말 많이 시키셨잖아. 너 시골사람이라서 그런지 정말 빠르더라. 하하. 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어.

첫 해(2009년) 내가 먼저 1군 올라가고 두 번째 해(2010년) 너도 1군에 왔을 때, ‘이제 정말 재밌게 야구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 그런데 내가 부상으로 2군에 갔잖아. 얼마 안 있어서 네게 전화가 왔었지. “(강)윤구야, 나 선발기회 잡았어. 아 떨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솔직히 샘이 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마음이 안 들더라고. “감독님께서 볼넷 싫어하시니까, 네 스타일대로 쑤셔 넣어. 지금 네 볼 좋아서 아무도 못 친다”고 말했던 게 떠오르네.

이번 가을에도 하고 싶은 말은 하나 뿐이야. 우리가 원래 주눅 드는 스타일이 아니잖아. 너나 나나 그래서 친해졌던 것이고…. 투수는 ‘내 볼을 아무도 칠 수 없다’고 믿으면 이미 이긴 것이라고 생각해. 100% 컨디션이 아니더라도, 자신 있게 던지면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내가 고원준인데!’라는 마음으로 너답게 던져주렴.

난 네가 PO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이미 부럽다. 참, 그리고 내년에 나랑 선발 붙으면 꼭 빼달라고 말씀드려. 난 친구의 승리를 뺏기 싫다. 혹시 걸려도 쫄지는 말고. 살살 던져 줄 테니…. 하하. 농담이고, 우리 멋진 승부 한번 해보자. 너 트레이드 됐을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부산 가서 행복하라”고. 이번에도 ‘쿨’하게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부산 가서 멋지게 해라! 친구야.

정리|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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