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넘은 강철심장 베켈레 “이젠 나를 넘겠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8월 22일 07시 00분


1만m 5연패 꿈꾸는 베켈레

8년전 게브르셀라시에 훈련파트너의 반란
폭발 스피드 장점…트랙종목 첫 5연패 도전
100m 평균 15초78 주파…1만m 세계신 보유
부상 1년여만에 공식경기…실전감각이 변수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 육상의 원초적인 속성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말은, ‘올림픽 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로 꼽히는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페크(체코·1922∼2000)의 입에서 나왔다. 자토페크는 1952헬싱키올림픽에서 남자5000·1만m에 이어 마라톤까지 석권하며 전무후무한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자토페크 이후 올림픽 5000·1만m·마라톤 3관왕은 도전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유일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케네니스 베켈레(29·에티오피아)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1만m 5연패를 노리는 그는 “2012런던올림픽에서는 자토페크 이후 첫 3관왕도 두드려보겠다”고 말해왔다.

○베켈레, 우상 게브르셀라시에를 넘다

베켈레의 등장 이전까지 남자1만m의 최강자는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8·에티오피아)였다. 게브르셀라시에는 1993슈투트가르트·1995예테보리·1997아테네·1999세비야세계선수권 4연패, 1996애틀랜타·2000시드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세계기록도 무려 25번이나 세웠다. 베켈레는 19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게브르셀라시에가 1만m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에 깊은 감명을 받은 뒤, 육상에 뛰어들었다.

이후 게브르셀라시에의 훈련파트너를 자청하며 실력을 키웠다. 훗날 베켈레는 “훈련파트너의 경험이 소중한 자신감”이라고 회상했다. 세계 최고선수의 레이스 운용전술 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2003파리세계선수권 1만m에서 게브르셀라시에를 생애 처음으로 눌렀다. 이후 2004아테네올림픽에서도 또 한번 금메달을 따며, 게브르셀라시에의 사상 첫 1만m 올림픽3연패 도전도 좌절시켰다. 결국 게브르셀라시에는 아테네올림픽을 끝으로 마라톤으로 전향해 세계기록(2시간3분59초) 보유자가 됐다.

○트랙종목 사상 최초의 5연패 도전

베켈레는 게브르셀라시에의 위업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1만m에서 2003파리·2005헬싱키·2007오사카·2009베를린 세계선수권 4연패와 2004아테네·2008베이징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베이징올림픽과 베를린세계선수권에서는 5000m에서도 1위에 오르면서,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연속으로 장거리 2관왕이 되는 기록도 남겼다. 현재 5000m(12분31초35)와 1만m 세계기록(26분17초53)도 그의 차지다.

만약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도 1만m우승을 차지한다면, 베켈레는 남자트랙 사상 최초로 5연패의 위업을 세우게 된다. 필드종목에서는 ‘인간 새’ 세르게이 부브카(48·우크라이나)가 남자장대높이뛰기에서 6연패를 달성한 것이 최다기록이다. 만약 베켈레의 1만m 우승행진이 2012런던올림픽까지 이어진다면, 사상 최초의 1만m 올림픽3연패 기록도 그의 몫이 된다.

○약혼자 사망 충격 이겨 낸 베켈레, 부상 시련도 넘어설까

베켈레가 탄탄대로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다. 2005년 1월 동료 육상 선수였던 약혼녀 알렘 테칠레가 에티오피아에서 함께 산악훈련을 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다. 결혼을 불과 네 달 앞두고 생긴 일이었다.

약혼녀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그는 큰 충격에 빠졌다. 직후 열린 대회 3000m에서는 바퀴 수를 헷갈려 경기를 끝냈다가 실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에티오피아의 유명 영화배우 다나위트 제르레그지아베르와 결혼하며 안정을 찾았다. 현재는 그의 인생에서 2번째 시련기다. 베켈레는 2009세계선수권 이후 마라톤전향을 선언했다. 우상인 게브르셀라시에의 뒤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2010년 1월 장딴지 근육이 파열됐고, 1년 넘게 공식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로이터 통신은 17일 베켈레의 매니저 조스 헤르멘의 말을 인용해, “베켈레가 대구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고 보도했다. 훈련도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베켈레의 가장 큰 강점은 폭발적인 스피드다. 1만m 세계기록(26분17초53)은 100m를 평균 15초78로 주파한 결과다. 5000m 세계기록(12분37초35)은 100m를 평균 15초15로 달려야 가능하다. 최종 100m에서는 11초대까지 달린 적도 있다. 그래서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도 “600m라면 내가 이기겠지만, 800m라면 베켈레가 유리할 것”이라며 꼬리를 내린다. 대구에서도 장거리 황제의 우승행진은 계속될까. 변수는 단 한 가지. 베켈레의 실전감각 뿐이다.

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nan11)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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