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고 뺏기는 심리전…사·인·전·쟁!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8월 15일 07시 00분


11일 미국의 스포츠전문채널 ESPN의 보도로,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쑥대밭이 됐다. ESPN이 인터넷판을 통해 “2010시즌 토론토의 홈구장 로저스센터 외야에서 누군가가 토론토 타자들에게 상대팀의 사인을 훔쳐 가르쳐줬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사인 훔치기’는 야구계의 은폐된 진실 중 하나다. 넥센 김시진 감독의 표현대로 하면 “야구에서 사인이 존재하는 한, 뺏고 뺏기는 전쟁은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사인 훔치기를 둘러싼 첨예한 전쟁터 2루

6월15일 대구 삼성전. LG 박종훈 감독은 “삼성의 2루주자 모 선수가 타자에게 포수의 사인을 가르쳐 준다”고 어필했다. 이에 앞서 6월8일 광주 두산전에서는 KIA 로페즈가 2루 주자였던 두산 모 선수에게 “사인을 훔치지 말라”고 말한 뒤, 두산 김민호 코치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2가지 경우 모두 사인 훔치기가 인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2가지 사례는 2루가 ‘사인 훔치기’를 둘러싸고 양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공간임을 설명한다. 주자가 포수의 사인을 잘 볼 수 있는 각도이기 때문이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사인을 훔친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주자는 가장 잘 뛸 수 있는 자세를 ‘일정하게’ 취하고 있어야 하는데, 수시로 움직임이 바뀌는 경우다. 주자가 원래 두 손을 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손을 내린다든지…”라고 설명했다.

○1루도 예외는 아니다

사인을 훔치기를 둘러싼 싸움은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세계3대 추리소설의 하나인 ‘Y의 비극’을 쓴 앨러리 퀸(미국)은 야구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김시진 감독은 “사인 훔치기가 잦아지면, 사인도 복잡해진다.

일본에서는 투수가 난수표를 붙이고 등판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난수표가 포수의 사인을 종합해 구종과 코스를 선택하는 계산기 역할을 한 것이다. 각도상 포수의 사인을 잘 보기 힘든 1루에서도 사인 훔치기가 일어날 수 있다. 김시진 감독은 “포수의 특정 손가락이 움직이면, 팔뚝의 근육 움직임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1루에서도 그것을 통해 사인을 간파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한국야구위원회(KBO) 2011대회요강 제26조‘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에는 “벤치내부, 베이스코치 및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투수의 구종 등의 전달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또 “상기 사항을 위반하였을 경우 해당 당사자는 즉시 경기장 밖으로 퇴장당하며 필요시 제재를 과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주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코스를 알려주는 ‘대놓고 하는 도둑질’도 본인이 “아니다”라고 하면 제재를 하기가 쉽지 않다. 김시진 감독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 아닌가. 사인을 잘 훔치는 팀이 사인도 복잡하고, 더 예민하다”고 밝혔다.

문학 | 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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